 시인 박정근 (대진대학교 대학원장)
I 가느랗게 내리는 빗줄기 사이로 어스름이 밀려오는 비오는 날 저녁에는 그대와 함께 나눌 술 한잔이 그립다
비에 젖어 걸어가면 정들었던 거리가 갑자기 낯설어지고 갈 곳 몰라 헤매는 발길처럼 이리저리 나부끼던 고향집 굴뚝 연기가 빗줄기와 함께 안개로 다가온다
비내리는 도회의 뒷골목 헤프게 애인을 부르는 그대는 어두운 길 어드메에 눈길이 머무는가 떠나온 시골집 전나무 울타리를 돌아 허름한 대문 열고 들어가면 그대 반겨줄 이 아직도 있는가
술한잔에 젓가슴을 풀어 헤치면 쓸쓸한 바람 불어오고 가슴 쓰라릴수록 풀어헤치는 그대는 추운 나신이 되어간다
비내린 저녁 차가운 안개가 산허리를 감싸는데 술기운에 흐려진 눈동자는 비에 젖어가고 어느새 창밖 어두움이 막아선다.
II 그대 노래하리 축축한 목소리로 어린 날 고향의 저녁을
음산한 안개가 피어오르는 들판을 쳐다보며 하염없이 넓기만 한 세상이 두려워 앞가슴을 자꾸만 여미었네 까만 장막이 서서히 내리면 그대가 꿈 속에 노래하는 낙원이 그 곳에 있었네
이제 그대 여밀 가슴조차 잃어버리고 찬바람 스미는 술청에 앉아 비너스의 가슴이나 되는 듯 앞저고리 열고 내밀지만 가슴은 자국도 없이 녹아 내리고 빗줄기 사이로 달려오는 어둠에게 손을 내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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