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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창종의 포천이야기 (155)

포천의 언론인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6년 02월 01일


포천출신 최초의 언론인은 1919년 기미년 3·1운동 때 민족 대표 33인 중 한분이셨던 이종일(李鍾一) 선생이시다. 이종일 님은 1858년 11월 6일 포천에서 출생하여 1925년 7월 13일 타계하셨는데 광무 2년 (1898년, 청년 애국호)에 관여하였으며 <경성신문>에 논설위원으로 언론계에서 투신하여 <제국신문>을 창간하였는데 순 한글 신문이었다. <황성신문> 사장에 피임되었으나 고종황제의 탄신일 경축기사에 「선수만세(聖壽萬歲)」가 「성수망세(聖壽亡歲)」로 오기(誤記) 되어 불경죄(不敬罪)로 투옥되었으나 중상모략으로 판명되어 석방되기도 하였다.

소설가 이해조(李海朝)님은 연재 소설을 신문(매일신보·황성신문)에 발표한 일은 있으나 언론 활동을 하였다는 기록은 명확하지 않다.

1945년 조국이 일제 강점기를 벗어나 해방이 되자 내 고향 포천에도 신문이 다수 보급되고 신문 독자도 많았다.

최초의 지국장으로 동아일보 문정명(文正明) 지국장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야당 신문인 동아일보 지국장으로 포천의 신문 보급에 힘쓰는 한편 포천 소식을 동아일보 지방란에 기사화 하여 송고하는 일을 하기도 한 문정명 씨는 사명감을 가진 지방 신문인이었다.

그 후, 연모씨, 이모씨 등 중앙 일간지 경기도 북부 지사 지국을 운영하였으나, 특기할만한 것이 없다.

1970∼80년대에 이르러 경인일보가 지방지로 일간 신문을 발행하고 포천지사 주재 기자로 조규대씨가 활동하여 포천소식을 경기도내에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하였는데 현재 「청성공원」조성, 포천, 양주간 연결 및 가평 철원 연결 도로망 구축의 필요성들을 기사화 하였던 공적을 남긴 유능한 기자였는데 경인일보 본사 부장대우 포천 주재기자였다.

그 후, 중앙에서 활동한 유명 언론인으로는 한국일보 주간부 부장이자 시인인 채희문(蔡熙汶) 님과 MBC 체육부장이었던 대기자 박태웅(朴泰雄) 님이 있다.

한국일보 주간부 채희문 부장은 신문인으로 저술가로 시인으로 영화 이야기 작가로 독일 문학의 번역가로 명문 한국외국어 대학교 독문학과를 졸업한 그 권위를 자랑하기도 하였다.

MBC 스포츠 기자로 (공채1기) 그 명성이 드높았던 박태웅 기자이자 아나운서는 스포츠 중계는 물론 뉴스 보도에서 두각을 나타내 포천을 빛낸 인물이었다. 한국 스포츠 기자 연맹 총회장을 맡아 후배 기자들의 권익과 양성에도 크게 기여했다. 작은 체구이지만 멋진 어나운스 맨트는 인기인으로서 갖추어야할 바를 고루 갖춘 인물이었다. 근래에는 MBC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요즈음 「포천신문」이 포천의 최초이자 최장수 신문으로 우뚝 서서 공익(公益)과 공평무사(公平無私), 공명정대(公明正大)의 신문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도 바로 포천출신 언론인 선배들의 토대 위에서 이룩되었다고 볼 수 있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6년 02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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