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천의 「새마을 운동」은 故 정도식 교장님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하면 여러 독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정도식 교장님은 포천의「상록수」였다.
1900년(고종 37년) 군내면 좌의리에서 출생하신 정도식 선생께서는 본관이 동래였다. 1920년 3·1운동 다음해에 서울에 있는 경성사범 학교를 졸업하시고 일동공립 보통학교를 개교할 때 훈도(訓導 : 지금의 정교사)로 취임하셨다.
농촌부흥운동을 일으켜 잘 살기 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밤에는 야학을 개설하여 마을 사람들과 학교 못 가는 어린이들을 사랑으로 가르치셨다.
마을 청소년들을 모아 지금의 4H구락부 같은「일심회(一心會)」라는 단체를 조직하여 아침 일찍 일어나 마을을 청소하고 심신을 단련하는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농촌계몽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선구자적 상록수로서 온 심혈을 경주한 모범 청년교사였다.
특히 퇴비 증산 운동을 독려하기 위하여 새벽부터 온 마을을 누볐으며 밤이면 마을회관에서 계몽강연을 하기도 하였다. 또 늘 약가방을 들고 다니며 학생들을 치료함은 물론, 마을 사람들도 진료하였다. 가산, 삼정, 청성초등학교의 교사·교장를 역임하고, 동두천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 급환으로 별세하시었다.
추운 겨울 정도식 교장님의 장례식에는 제자들의 조문 행렬이 십리나 길게 이어졌던 생각이 난다.
1955년 겨울 55세를 일기로 그토록 사랑하던 학교와 고향과 포천사람들을 떠나시던 날 하늘이 무너지는 듯 통곡하던 생각이 어제 같은데 벌써 50년의 세월이 흘렀다.
「새마을 운동」의 선구자였다고 말하는 제자도 있었다. 「농촌 계몽 운동」의 땀 흘린 교육자였다고 회상하는 사람도 있다. 1955년 포천초등학교에서 포천관내 교장회의를 할 때면 교장 교사들이 보는 앞에서 철봉 소차, 대차, 등 난이도가 높은 묘기를 시범했던 정도식 교장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운동도 못 하는 운동이 없을 정도였으니 놀라운 체육 기능 보유의 모범 교장이셨다. 양주군, 포천군, 고양군, 경기도 학무과장으로 승진, 경기 교육 총 책임자로 초빙되었으나 사양하고 오직 시골 고향 어린이나 청소년 교육을 위해 헌신한 한국의 「페스탈로찌」였다고 볼 수 있다.
요즈음 학교의 교육위기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내 고향 포천의 교육이 타 시·군에 비해 모범적으로 잘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정도식 선생님 같은 훌륭한 선구자가 있었던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되어진다. 포천의 4H운동이나 농어촌 발전 운동이 바로 정도식 교장님의 선구자적 노력의 계승운동이 아닌가 생각되어진다. 故 정도식 교장님은 군내면 좌의리 동래 정씨 선영에 잠들고 계시다. 필자연락처 02-932-2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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