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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의 선비정신·17]청직(淸直) 관리요, 가사문학(歌辭文學)을 꽃 피운 송강 정철(松江 鄭澈)

리효종 포천한시사 대표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6년 01월 02일

본관은 연일(延日), 돈녕부 판관 유침(惟沈)의 아들. 정철의 맏누이는 인종(仁宗)의 숙의(淑儀)였고, 둘째 누이는 종실 계림군(桂林君)의 부인이다. 따라서 정철은 어려서부터 궁안에 수시로 출입할 수 있었다. 경원대군(후에 명종)과는 어려서부터 소꼽친구였다. 어려서는 매우 행복한 환경이었다.


1045년(명종1) 을사사화(乙巳士禍 윤원형(尹元衡)일당이 윤임(尹任)일당을 제거하기 위한 사화)가 일어나자 매부 계림군이 역모죄로 몰려 죽음을 당하자 아버지와 큰형이 귀양을 가게 되어 온 집안이 서울에서 살지 못하고 흩어져 살게 되면서 귀동으로 자라온 그였지만 소년시절 뼈아픈 화란을 겪으면서 불의에 대한 증오와 정의를 지키려는 강직한 마음의 씨가 학문을 배움에 앞서 생활속에 깊이 심어졌다.


1551년(명종6) 아버지가 석방되자 서울의 집을 정리하고 선조의 산소가 있는 전라도 담양 창평으로 내려갔다. 풍상에 시달리던 유배(流配) 옥고(獄苦)에서 벗어나 비로서 안주할 땅을 찾았다.


수학의 기회를 얻지 못했던 정철도 비로서 훌륭한 스승을 찾아 학문을 닦을 수 있었다. 이 곳의 산수는 그의 어린 상처를 씻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시정(詩情)을 길러 주었고, 장원급제할 학문을 익혀 갈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성산(星山)기슭 사시사철 푸른 나무 송강(松江)변을 따라 절경을 이루고 있는 기암괴석 소나무 사이에 자리잡은 정자, 겨울이면 설중매(雪中梅), 명봉산(鳴鳳山)의 풍물과 절경은 시인 정철의 시정을 길러 주는 꿈의 요람이었다. 송강(松江)이라는 호도 이곳 죽계천(竹溪川)의 별병이었다.


정철은 먼저 고봉 기대승(高峰 奇大升)에게 수학하였고 이어서 당시 전라도의 도학(道學)의 종사(宗師)라고 일컬어지는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선생 문하에서 공부했다. 그리고 삼당시인(三唐詩人)의 한사람으로 시재(詩才)를 일세에 드날리던 석천 임억령(石川 林億齡)에게서 시를 배웠다.


1560년(명종15) 유명한 성산별곡(星山別曲)을 지었다. 1561년(명종16) 진사시에 일등으로 합격. 1562년(명종17) 문과별시에 장원으로 급제, 이때 방목(榜目)을 보던 명종은 ‘이게 바로 정철아니냐, 정철이가 장원을 했구나’ 하며 무릅을 치며 반가움에 소리를 높였다 한다. 20여년전 소꼽친구였던 정철과의 어린시절이 그리웠다.


‘듣거라! 장원급제한 정철에게 주찬을 내리도록하라, 그리고 정철을 서문으로 들도록 하여라’ 친히 만나보고 싶었다. 파격의 분부였다. 정철은 몸둘 바를 몰랐다. 분골쇄신 성은에 보답하기로 다짐하였다.


1562년(명종17) 주찬을 내려 치하한 명종은 정철을 성균관 전적에 임명했다가 곧이어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에 임명, 지평에 임명된지 얼마 안되어 한 옥사가 일어났다.


그는 이 옥사를 다스림에 있어 자기 인간면을 여실히 드러내었다. 피고는 명종의 종형(從兄)인 경명군(景明君)이었다. 경명군이 그의 처가의 재산을 탐내어 이를 빼앗을 의도로 자기의 처남을 죽이고 말았다. 이것이 탄로되어 경명군 부자가 사형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명종은 종형 경명군의 일인만큼 송강에게 내밀히 분부하여 극형을 면하게 하도록 특청하였다.


그러나 송강은 국법을 어길 수 없다고 고집하여 경명군 부자를 사형하고 만 것이다. 이 중대한 옥사를 재결한 송강의 처사는 명종의 비위를 크게 거슬리고 말았다. 이로 말미암아 송강은 청환직(淸宦職)에서 밀려나 좌랑(佐郞), 전적(典籍), 도사(都事)등으로 오랫동안 전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상감의 내청까지도 어기면서 국법을 준엄하게 집행한 송강의 청백(淸白) 강직(剛直)한 성격을 역력히 찾아 볼 수 있었다. 전형적인 한국 선비의 기상이다.


1566년(명종21) 사헌부 지평에 복귀되었다가 북관(北關:함경도) 어사(御使)에 임명, 20년전 좌수의 가족으로 언소을 비비고 떨며 고생하던 관북땅에 이제는 산천초목도 떤다는 어사가 되어 다시 가게 된 것이다. 지방행정과 민정을 살피고 돌아와 율곡과 함께 호당(湖當)에 피선되었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6년 01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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