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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뿌리를 모르면 주장할 수 없고

주장하지 못하면 지킬 수 없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5년 12월 21일


이 규 임
동아방송대학교수.포천 가산면 출생

“뿌리를 모르면 주장할 수 없고 주장하지 못하면 지킬 수 없다”는 것이 내 평소의 생각이다.

우리는 바야흐로 [글로벌(global)] 시대에 살고 있다. 글로벌 시대란 WTO시대를 말하는 것이다. WTO시대란 빗장을 열어놓고 사는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WTO시대 이전에는 빗장을 걸어놓고 살았었다. 빗장을 걸어놓고 살았기 때문에 담장 안에서는 우리들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빗장을 열어놓고 살아야 하는 WTO시대가 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빗장을 열어놓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누구든지 언제든지 담장 안에 들어와 우리와 같이 경쟁하게 되었다. 

흔히들 “가장 로컬(local)한 것이 가장 글로벌(global)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국제적이란 말이다. 이 말은 가장 지역적 특성을 잘 지니고 있는 것이 국제무대에서도 통한다는 말이다. 지역적 특성이 없으면 국제무대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말이다.

국제무대의 특성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일등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던지 일등이어야 하고 최첨단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들은 가장 ‘로컬’한 것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다른 나라에는 없고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것, 그러면서도 세계와 통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내야 한다. 고유하면서도 보편적 가치를 지닌 그 무엇을 찾아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유엔이 정한 세계문화 유산을 여럿 가지고 있다. 한글이 그렇고 조선왕조실록이 그렇고 팔만대장경이 그렇고 강릉단오제가 그렇다.

한글이 왜 우수한가? 세계 어느 나라 말이던지 표기할 수 있고 가장 적은 타수로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소통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우리 한글만큼 어떠한 말이던지 표기할 수 있고 가장 적은 타수로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문자는 없다. 가장 적은 타수로 소통할 수 있는 문자는 없다. 특히 휴대전화가 세계를 풍미하고 엄지문화가 그것을 지배하고 있는 IT문화 현장에서 한글을 당할 문자는 없다. 세종대왕께 감사해야 하는 이유이다. 한글을 세계에 널리 보급해야 하는 이유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왜 소중한가? 세계 역사상 한 왕조가 500년을 지탱한 나라도 없으려니와 그 500년 역사를 고스란히 기록한 역사를 가진 나라도 없다. 역사는 우리의 정체성을 지켜주는 보루요 자산이다. 역사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이자 스승이다. 그 속에 선조들의 지혜와 삶과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겨있고 이념과 사상과 통치철학이 그대로 담겨있다. 역사를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이다. 역사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이다. 역사에서 배워야 하는 이유이다.

팔만대장경은 왜 귀중한가? 세계에서 단 하나 밖에 없는 유일한 장경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신세계를 한 눈에 보여주는 경전이기 때문이다. ‘각(覺)’의 세계를 열어주는 경문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 우주와 철학이 있고 그 속에 종교와 신앙이 있다. 장경은 믿으라 하지 않는다. 따르라 하지 않는다. 스스로 깨우치라 한다. 스스로 부처가 되라 한다. 대중이 받드는 이유이고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이다.

강릉단오제가 시사하는 것은 무엇인가?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주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빛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키지 않으면 남도 지켜주지 않는다. 우리가 주장하지 않으면 남이 인정해주지 않는다. 우리가 주장하지 않고 등한시하는 바람에 김치를 뺏길 번 했다. 단오제도 뺏길번 했다. 주장했기 때문에 되찾을 수 있었고 주장했기 때문에 지킬 수 있었다. 김치를 지키고 단오를 지켰다고 안심하고 있을 처지가 아니다. 고구려와 독도가 송두리째 날아가게 생겼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역사를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사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뿌리를 모르는데 주장할 수 있는가? 나를 모르는데 주장할 수 있는가? 뿌리를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 뿌리를 알고 나를 알아야 나의 정체성을 주장할 수 있고 나라와 민족을 지킬 수 있다. 뿌리를 모르고 나를 모르니 역사를 뺏어가도 어쩌지 못하고 땅을 뺏어가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다.

역사를 배우지 않고 역사를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황국사관에 주눅 들고 식민사관에 치이는 것이다. 중국은 우리의 역사를 1세기 동안 뜯어고쳤고 일본은 우리의 역사를 36년 동안 뜯어고쳤다. 우리의 좋은 것을 그들의 것으로 만들었고 우리의 민족혼을 말살시켰다. 그러한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동북공정이 그렇고 영유권 분쟁이 그렇다. 왜 고구려가 그들의 것인가? 왜 독도가 그들의 것인가? 우리가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우리가 공부해야 한다. 우리가 주장해야 한다. 그리고 지켜야 한다.

시어간(始於艮) 종어간(終於艮)이라 했다. 시작도 간방에서 마침도 간방에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간방(艮方)]은 우리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우리의 땅이다. 유문사 이래 간방이 우리 땅이라는 것은 그들도 인정하고 있다. 백두산 천지지에서 백록담 천지에 콤파스를 대고 그어보아라. 그 범위가 바로 저들이 인정하는 간방이다. 이 땅에서 문화가 싹트고 이 땅에서 문화가 전파된 것이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 왜 이러한 사실을 우리 스스로 부정하는가?

저들은 없는 역사도 만들어내고 있다. 2주갑 인상이 바로 그것이고 동북아문화권 시비가 바로 그것이다. 황하문화권과 동북아문화권은 엄연히 다르다. 그것은 발굴유물로도 증명되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억지주장을 펴고 있다. 동북아 문화권마저 저들의 것이라는 것이다. 동북아 문화권을 인정하면 저들의 주장이 스스로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900여회의 외침을 받았다고 한다. 단 한번도 외국을 침범한 일이 없다고 한다. 오죽 힘이 없으면 그랬겠느냐는 식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힘이 없어서 외국을 침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못나서 외국을 침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가르침 때문이다. 우리 선조들의 가르침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선조들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홍익인간(弘益人間)’이다. 홍익인간이란 “너도 잘 살고 나도 잘 살고 다 함께 잘 살자”는 것이다. 다 함께 잘 살자는 데 싸움이 있을 수 없다. 다툼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외국을 쳐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힘이 없어서가 아니다. 못나서가 아니다. 가르침 때문이다. 홍익인간이란 가르침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역사가 말해준다. 당나라와의 싸움을 보라. 수나라와의 싸움을 보라. 어떠했는가? 수양제가 어떻게 물러갔는가? 당태종이 어떻게 퇴각했는가? 스스로 외침은 하지 않았으나 외국이 우리나라를 침범할 때는 단호히 이를 물리쳤다. 이것이 우리의 추상같은 기상이요 전통이다.

우리 스스로 우리를 드높여야 하다. 우리 스스로 우리 선조들의 이 같은 정신을 선양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 그 가르침을 떠받들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이 이상 훌륭한 가르침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종교백화점’이라 한다. 그만큼 우리나라에 종교가 다양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다투지 않는다. 싸우지 않는다. 신앙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다고 싸우지 않는다.

가르침 때문이다. ‘홍익인간’이란 가르침 때문이다. ‘다 함께 잘 살자’는 가르침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잘 알아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후대에게 잘 가르쳐야 한다.

글로벌 시대에 세계를 관통할 수 있는 더 좋은 가르침이 이 이상 어디 있는가? 글로벌 시대에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통할 수 있는 이러한 가르침이 또 어디 있는가? 어디 그 뿐인가? 개천시대에 단군께서는 ‘삼교지도(三敎之道)’로 험난한 세상을 살아나가라고 가르치셨다.

‘삼교’? 삼교란 무엇인가? 삼교란 ‘지감(止感)’과 ‘조식(調息)’과 ‘금촉(禁觸)’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또 지감과 조식과 금촉이란 무엇인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지감(止感)’이란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고 ‘조식(調息)’이란 몸을 다스리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며 ‘금촉(禁觸)’이란 나와 상대를 다스리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지감과 조식과 금촉이 한데 어우러져야 도(道)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 사람들은 ‘도(道)’는 버리고 ‘교(敎)’만 가지고 다투고 있다. ‘교’는 이처럼 상호보완적인 것이지 배타적인 것이 아니다. ‘삼교’가 모였을 때 비로소 ‘도’를 이루기 때문이다. ‘교’만 보아서는 안 된다. ‘도’를 보아야 한다. ‘도’를 버리고 ‘교’만 보기 때문에 다툼이 일고 시비가 이는 것이다. ‘교’를 초월하여 ‘도’를 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도’의 사회를 이끌어나가야 하는 이유이다.

‘도(道)’라 했는데 도란 또 무엇인가? 도란 ‘길’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이 가는 길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이 가면 ‘길’이 생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길’은 그 길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길은 ‘자연(自然)’이 가는 ‘길’을 말하는 것이다. 자연이 가는 ‘법칙’을 말하는 것이다. 즉 ‘도’란 자연을 다스리는 ‘섭리(攝理)’와 그 ‘이치(理致)’를 말하는 것이다. 자연의 섭리와 자연의 이치를 ‘철학적(哲學的)’인 용어로 바꾸어 놓은 것이 바로 ‘도’란 말이다. 도는 곧 ‘자연’의 다른 이름이요 ‘자연’ 그 자체이다.

사람을 가리켜 만물의 영장이라 한다. 만물의 영장이라 해서 자연을 떠나서 사는 것은 아니다. 자연 속에 한데 어울리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자연의 법칙을 떠나서 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처럼 인간도 자연의 법칙 속에서 살아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연의 다스림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도’를 말했던 것이고 ‘삼교’를 말했던 것이다.

마음과 몸과 ‘행(行)’을 함께 다스려야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살 수 있었기에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맘과 몸과 행의 조화점(調和點)을 찾으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그 삼자간에 ‘균형(均衡)’을 이루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균형과 조화라는 잣대’를 벗어나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이 가르침이 바로 삼교지도의 가르침이요 오늘 이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는 비결이다.

우리는 또 천부경(天符經)이라는 경전을 가지고 있다. 천부경이란 무엇인가? 천부경이란 81자로 이루어진 경전이다.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로 시작해서 일종무종일(一終無 終一)로 끝나는 경전이다. 81자 속에 ‘우주 본체의 이치’와 인간 심성의 원리]가 다 담겨 있는 경전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오래된 경전이다. 이러한 경전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성경과 불경과 사서삼경만이 경전이 아니다.

성경과 불경과 사서삼경을 말하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잘 모른다. 물론 성경은 예수님 말씀이고 불경은 부처님 말씀이고 사서삼경은 공자님 말씀이라는 것쯤은 안다. 그러나 경(經)이 무엇인지는 잘 모른다. ‘경’은 계시를 받아서 쓴 글이다. 계시를 받아서 쓴 것만이 ‘경’이다. 그 외의 것은 ‘경’이 아니다. ‘경’은 이처럼 귀한 것이고 소중한 것이다. ‘경’은 사람의 말이 아니다. ‘경’은 절대자의 말이다. 이러한 고유의 ‘경’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그것이 바로 ‘천부경’이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잘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뿌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전통을 오늘에 되살려야 한다. 이러한 전통을 지켜야 한다.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뿌리를 모르면 주장할 수 없고 주장하지 못하면 지킬 수 없다.” 이것이 신년 새해에 필자가 던지는 화두(話頭)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5년 1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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