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에 보면 내 고향 포천은 임금님들의 사냥터이자 보병과 기마병(步兵·騎馬兵)들의 강무장(講武場:훈련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왕방산(王訪山)’(737m),‘해룡산(海龍山)’(661m),‘심곡산(深谷山)’(529m),‘보장산(寶藏山)’(585m) 등이 강무장인 훈련장이자 임금님들의 사냥터였다.
‘강무장(講武場)’이란 국가가 지정한 기병과 보병의 훈련장이자 임금님들의 사냥터인데 임금님들(와, 상왕, 태상왕)이 함께 사냥하기도 하였다 한다.
따로 훈련장을 정하였던 바가 없었던 당시 조선조에는 사냥 자체가 거국적인 육군의 기동훈련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냥터는 훈련장인 강무장이었으며 노루, 사슴, 멧돼지, 호랑이 등이 노획품이자 전리품으로 왕족들의 잔치 요리 재료로 쓰이기도 하고 종묘의 제수용품으로도 사용되었는가 하면 당상관들의 연회 석상의 하사품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내고향 포천 현감(6품)이나 영평 현령(6품)은 물론 경기감사, 강원감사, 철원군수, 가평현감 등이 임금님을 비롯한 왕자, 종친, 일품 높은 벼슬자리의 고관대작들을 접대하고 말 먹이풀을 대느라고 얼마나 고생이 많았는가를 알 수 있다.
추운 겨울 사냥터에서 군사들이 얼어죽는가 하면 말들도 얼어죽고 비바람 우박을 맞아 큰 고생을 하였다는 세종실록의 기록을 보면 가슴이 저며옴을 느낀다. 내 고향 포천사람이나 영평사람들이 임금님의 사냥터에서 고생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금의 국무총리나 부총리, 장관급 고관들 수십명이 사냥터로 몰려오면 전국 각지에서 징병된 군사들 수백 명이 몰이꾼이 되어 대항군으로 싸우고 임금님의 붉은 군복에다 청룡기를 휘날리면 화살을 피해 쫓기는 취도여 몰이하던 포천의 현감이하 관속들의 움추린 모습이 눈에 선하다.(시도 때도 없이 놀이터인 양 놀러 왔던 사냥터였다)
사냥뿐만 아니라 사냥 후에는 ‘굴동’,‘매장원(每場院)’, ‘풍양원(豊陽院)’ 등에서 임금의 어가가 유속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오늘날 포천의 왕방산 국사봉 기슭에는 아직도 멧돼지, 노루, 꿩 등이 많이 산짐승으로 살고 있다고 하며 보장산 등도 그 유서 깊은 영봉을 자랑하고 있다. 제주도나 각 도의 현대적 사냥터(수렵장)가 외화획득이나 고 소득원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내 고향 포천에도 골프장이 좋지만 공인 수렵장을 만들어 옛날 임금님들의 이름났던 수렵장의 전통을 이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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