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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우리고을 포천의 문화유적 17-충목단

소흘읍 무봉1리 33번지 충목공 유응부 선생 제단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5년 11월 11일


·지정번호: 경기도기념물 제102호
·지정년월일: 1988년3월21일
·시대: 1746년(영조 22)
·소재지: 소흘읍 무봉1리 27
·규모: 정면 370㎝, 측면 690㎝(장방형 곡담)
·재료: 목재 및 화강암


충목단은 소흘읍 무봉1리 33번지에 있다. 사육신의 한 사람인 충목공 유응부 선생의 제단으로, 이 제단 옆에는 충목공과 한남군 이어, 퇴은 양치의 단비가 나란히 서 있다.

처음 충목단을 설단한 것은 1746년(영조22)이다. 이 당시는 충목공의 단비만 세웠기 때문에 충목단이라 이름하였다. 이 충목단은 대원군 때 서원철폐령과 함께 훼철되었으며, 한때 손씨 일가의 묘지가 되기도 하였다. 당시 오위장이던 손형수가 부하를 동원하여 충목단과 유허비를 모두 제거하고 이 자리에 자기 선대의 묘역을 만든 것이다.

이에 포천의 유림들은 분격하였다. 1873년(고종10)12월17일자로 이병규, 송상희 등이 상소를 올려 시정을 촉구하였다. 이 상소가 받아들여져 손씨 일가는 처벌되고, 당시 포천현감 박용민도 파출되었다. 손씨 일가의 묘소도 모두 파헤쳐졌다.

그 후 포천의 유림들이 충목단을 복원하려고 애써 왔으나, 재정상 어려움을 겪어 부득이 주변의 유지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한남군과 퇴은공의 단비도 건립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본래의 충목단에 한남군과 퇴은공을 함께 배향토록 삼위의 설단이 이루어진 것이다.

충목단은 1단의 장대석 위에 잔디를 심어 지면과 구분하였고, 북단에 남향으로 충목단의 단비를 중앙에 모시고, 좌측에 한남군을, 우측에 퇴은공의 단비를 모셨다. 한남군과 퇴은공의 단비는 약간 정면 앞쪽으로 내어 중앙에 위치한 충목공의 단비와 간격을 떨어지게 하였다.

삼위의 단비는 화강암으로 된 3급의 대석과 오석으로 비신을 세웠으며, 단비 앞에 각각 상석을 설치하여 향사에 이용토록 하였다. 단비 주위는 자연석으로 쌓고 개와를 올려서 만든 곡장을 둘렀으며, 회문과 연결하여 외부로부터의 훼손을 방지토록 하였다.

충목단에는 충목공의 유허비도 함께 있는데, 비문의 글씨는 유척기가 썼다. 이 유허비각의 중건기는 김평묵이 썼다.


▶배향인물
유응부(兪應孚) ?∼1456(세조 2)
조선시대 무신이며, 사육신의 한 사람이다. 소흘읍 무봉리에서 출생하였고 자는 신지·선장, 호는 벽량이다. 키가 크고, 용모가 장엄하여 힘이 세고 활을 잘 쏘았다.
무과에 급제하였고 세종과 문종의 총애를 받았으며 첨지중추부사와 평안도절제사를 거쳐 1455년(세조1)에는 동지중추원사에 이르렀다. 이해에 성삼문, 박팽년 등과 단종복위운동을 꾀하여 명나라 사신 초대연에서 별운검이 되어 세조를 살해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당일 별운검을 폐하여 거사를 후일로 미루었다가 김질의 밀고로 사건이 탄로되어 모진 고문 끝에 죽었다. 유학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시조 3수가 전한다. 숙종 때 병조판서에 추증되었고 과천의 민절서원, 홍주의 노운서원, 대구의 낙빈서원, 영월의 창절사, 강령의 충렬사 등에 제향되었으며 시호는 충목이다.


양 치1400(정종2)~ 1483(성종 14)
조선전기 무신·충신. 신북면 기지리에서 거주했고 묘가 있다. 호는 퇴은, 본관은 청주. 도첨의시중 기의증손, 찬성사 지수의 손, 경안공 천진의 자, 세종 때 단종의 유모였던 양혜빈의 숙부, 충목단에 추배되어 있다.
세종때 김종서가 야인(여진족)을 토벌하여 6진을 개척할 때 종사한 공을 인정받아 함경도 병마절도사, 황해도병마절도사, 영암군수 등을 지냈으나 세조가 계유정란으로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위를 찬탈한은 한편 박팽년 등 사육신의 화를 입자 관직을 버리고 기지리(틀못이)에 은거하여 두문불출하였다. 정조 때 단종에 대한 충성을 인정받아 포상되었다.


이 어?~1456(세조2)
한남군 이어는 자는 군옥, 시호는 정도이다. 세종의 12째 아들로 혜빈 양씨의 소생이다. 양씨는 단종의 유모이기도 하다. 양씨는 세조가 단종을 폐위시키고 강제로 옥쇄를 빼앗으려 하자 부당함을 들어 극구 만류하다 화를 입었다. 이때 영풍군은 화를 입었고, 한남군은 양지에 유배되었다. 다시 아산·금산에 이배되었다.
1456년(세조2년)에 금성대군이 순천부사 이보흠 등과 결탁하여 단종의 복위를 꾀하려다가 발각되자 유배지에서 함께 화를 당하였다. 정조때 정도(貞悼)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5년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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