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래 양사언 선생의 13대 후손으로 대한노인회 포천시지회 감사, 포천향교 장의를 지낸 바 있는 양동춘(75·사진·가산면 정교1리) 옹은 “자기 분수를 지키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한국전쟁이후 미군 군속으로 근무했으며 이때 영어를 잘 익혀 교편을 잡기도 했으며 이후 1961년 가산면 금현5리에 영신약방을 개업했으나 의약분업당시 약방을 정리했다.
현재는 정교초등학교 맞은편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면서 논과 밭에서 농사를 짓고 살고 있는 양 옹의 별명은 ‘신언서판(身言書判)’이다. 포천유림에서 지어준 별명으로 ‘몸을 깨끗이 하고 말을 잘해야 하며 글을 많이 배워야 하고 옳은 판단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유림회원들은 양 옹이 이같은 강직한 성품을 지녔다고 하며 이를 지키다 보니 재산 모을 줄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성균관유도회 가산면지회장을 7년동안 하면서 청소년들에게 동방예의지국으로서 명예를 지켜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 청소년들은 태권도는 알지만 유학이 무엇인지 유학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모른다고 지적한다.
충신 조득남 선생 정문복원추진위원회 부회장으로 2001년5월 정문이 복원될때까지 양 옹의 봉사활동은 빛이 난다.
또 포천문화원 이사로서 13년째 활동하고 있는 양 옹은 과거 포천문화원의 이사 하면 학식과 덕망을 갖춘 인물로 주변에서 인정을 해 주었다고 강조한다. 포천문화원 이사로서 포천문화를 잘 정리하고 보존하는 일에 열심히 노력했음도 강조한다.
양 옹은 지난 93년부터 2년동안 포천로타리클럽 제6대 회장으로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였으며 그때 실천한 봉사정신으로 지금도 거액의 돈이 들어온다면 가장 먼저 어려운 이웃들에게 베풀 것 이라고 밝혔다.
미군부대에서 2년 동안 근무하면서 모은 돈으로 성북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제1회 졸업생이 된다. 당시 원근각처에서 공부하러 온 친구들이 지금 훌륭한 지도자로서 역할을 하고 이제는 서로의 안부를 걱정하고 있다고 한다.
항상 행동을 바르게 하고 분수를 지킬 줄 아는 지성인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양 옹은 자식이 올바르게 행동하면 부모도 칭찬을 받지만 자식이 불효하고 바르지 못하게 행동하면 부모까지 욕을 먹게 된다고 지적한다.
양 옹은 포천신문은 포천사회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좋은 소식들을 전해주고 있다. 길거리에서 인사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잘 모르지만 포천신문에서 사진으로 만나게 되면 알 수 있다. 또 선거결과도 알려주고 학교소식은 물론 어머니회의 활동사항도 세세하게 전달하여 주니 너무 고마운 신문이라고 밝혔다.
양 옹은 포천신문은 포천의 자랑거리를 많이 알려주는 신문으로 좀더 많은 부수를 발행하여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밝혔다.
앞으로 계획에 대해 경로당에서 노인들이 글씨와 한문을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경로당에 칠판을 마련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서로 번갈아 가면서 포천신문에 나온 이야기도 하고 글도 서로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사람이 배우지 않고 놀기만 하면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있어도 밤중에 길을 걷는 것과 같다”며 글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