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래 양사언(蓬萊 楊士彦)은 안평대군, 김구, 한석봉과 함께 조선조 4대 명필로 손꼽힌다. 특히, 양사언은 큰 글자와 초서체로 유명하다. 님의 글씨는 대부분 암각문(돌에 새겨진 글씨)으로 전하는데 현재 님의 13대 종손인 양재웅님이 소장하고 있는 양사언님의 ‘비(飛)’자 족자는 이 점에 있어 그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는데 그 보관상태가 매우 양호하다.(글자크기; 88cm 123cm, 족자크기;98cm 142cm)
이수광이 쓴 ‘지봉유설’에 있는 이야기를 살펴보자.
“공은 큰 글자를 잘 썼다. 일찍이 양양 별장에 있을 때, 날 비(飛) 한자를 써서 그 아들에게 부탁하기를 ‘나의 정력이 모두 이 글자에 있으니 아껴 간직하라.’ 이에 밀실에 간직하였던 바, 어느 날 바다 위로부터 바람이 불어와 그 종이를 날려서 공중으로 올라간 후에 그 소재를 알 길 이 없었는데, 뒤에 그 날자를 살펴보니 공이 세상을 버리던 날이었다”
원래 ‘비(飛)’자 족자는 두개인데 하나는 양사언 님이 하늘로 날아가실 때 함께 날아가고 또 하나는 아들을 통해 가보로 지금껏 전래(傳來)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유근(柳根:1549~1627)의 ‘비자기(飛字記)’를 살펴보자.
1546년(명종19년) 고성군에서 재임하고 있을 때 쓴 글씨이다. 본래는 ‘비래정(飛來亭)’의 현액을 쓰기 위하여 썼던 것이다.
“고래수염으로 ‘비(飛)’자를 먼저 써 놓고 ‘래정(來亭)’을 수차례 써 보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포기하였으며 ‘비(飛)’자만 족자로 만들어 걸어두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그 족자가 바람에 날려 사라졌고, 그 날이 바로 세상을 마친 날이었다.”
이 부분의 이야기는 양씨 문중에 전래 설화와 일치한다.
이 족자와 양사언의 죽음이 연관되어 전한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더욱이 그의 시 작품중에서 사용된 시어(詩語) 중에서 날 비(飛) 자가 유난히 눈에 띄게 많다는 사실만도 우연만은 아닐 듯싶다. 그의 글자가 “‘신기(神奇)’와 ‘정채(精彩)’가 뛰어나다”는 모든 사람들의 평은 이 같은 자료를 두고 한 말이다.(중간부분 생략)
선비가 추구하는 이상향(理想鄕)은 진경산수(眞景山水)이다. 그리고 죽어서는 하늘로 비상천(飛上天)하는 것 즉, 시심을 남기지 않고 하늘의 신선(神仙)이 되어 선계(仙界)로 날아가는 것이 최고의 희구하는 바였으며 선교(仙敎)의 이상(理想)이기도 하다.
바로 내 고향 포천출신의 선풍도골(仙風道骨) 신선의 풍모와 도인의 모습을 지녔던 봉래 양사언 선생께서는 이 세상 사실 때에 금강산과 내 고향 왕방, 수원, 청성, 죽엽, 운악산을 지극히 사랑하며 노래하셨던 도인이셨으며, 죽을 때에는 자기의 혼백과 정기가 담긴 비자를 타고 하늘나라로 신선되어 날아가셨음을 알 수 있어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