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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의 선비정신·12]공직자의 귀감이요 청백리였던 오리(梧里) 정승

이원익 1547년(명종2) ∼1634(인조12)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5년 10월 21일

이원익은 태종의 자 익녕군(益寧君)의 4대손, 자는 공려(共勵), 호는 오리(梧里), 시호는 문충공(文忠公)이다.

임금이 그의 검소한 생활에 대하여 가히 경의를 포할만하다 하였다. 재상을 지내고도 초가집에서 쓸쓸하고 비바람도 못가리는 형편이어서 임금이 집을 지어준 청백리의 표본이다. 그는 원래 성품이 대쪽같이 곧아서 사교를 싫어하며 공사가 아니면 나오는 일이 별로 없어 아는 이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유성룡(柳成龍)만은 그의 슬기로움을 알아주었다. 1588년(선조21) 승지가 되었다가 관직에서 물러나 쉬고 있다가 안주목사(安州牧使)가 되었다. 안주는 본래 국방상 중요한 곳이었으나 그즈음 크게 황폐되었고 기근이 심하였다. 그는 부임길에 조 만석을 국고에서 얻어 가지고 가서 굶주린 백성에게 나누어 주고 대파하는 종자로 쓰게 하였다. 그해 농사가 대풍을 이루어 백성들은 생업에 전념할 수 있었고 자연히 부근의 산적과 도적이 사라지게 되었다.

또한 군졸들의 방수(防戍) 4번제를 6번제로 개정하여 군복무기간을 단축하여 원만하게 다스렸다. 안주에는 원래 뽕나무가 없었는데 이원익이 백성들에게 누에치기를 장려하여 양잠업을 크게 일으켜 주민의 소득증대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래서 그곳 사람들은 그를 이상공(李桑公)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선조는 오랫동안 그의 공로와 고생을 참작하여 공조참판에 임명하고 이어서 대사헌, 호조와 예조의 판서에 임명하였다.

그가 46세 되던해 1592년(선조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신명을 바쳐 진충보국하였다. 전황이 급박해지자 그를 평양감사로 임명하여 먼저 가게 하였다. 전세가 기울어지자 안주목사로 있으면서 은혜있는 정치로 민심을 사고 있었기 때문에 먼저 보내어 백성을 위무해서 왕의 피난길을 미리 준비하게 한 것이다. 왕이 개성을 거쳐 평양에 이르렀을 때 장졸 3000을 거느리고 평양을 전력수비하여 왜군의 진격을 저지하였으나 역부족으로 평양이 함락되자 정주(定住)로 후퇴하여 흩어진 군사를 모아 전력을 재정비하여 대동강 서쪽을 잘 방어하였다. 그해 8월 명나라 원군과 협력하여 평양을 탈환하려고 하였으나 여의치 않다가 이듬해 명과 협력하여 평양을 탈환하여 왕이 환도하는 길을 터 놓았다.

마흔아홉 되던 1595년(선조 28) 그는 우의정이 되어 입조하였다. 지방장관으로 있다가 입상(入相)하는 것은 번임배상(藩任拜相)이라하여 매우 드문 일이었고 일종의 파격적인 인사조치였다. 사도체찰사(四道體察使)를 겸임하였다.

당시 혹심한 전란중임에도 불구하고 조정은 정쟁에 휘말리고 있었다. 그에 대한 시비도 여러번 일어났다. 그는 이를 개탄하고 “공의(公議)는 숨을 죽이고 붕당은 바람을 이루어 국사는 날로 쇠퇴하여 횡의(橫議)가 함부로 행하여 짐은 조정의 큰 수치이다”라고 상소하였고 한때 벼슬을 버리고 금양에 퇴거까지 하였다.

그는 임진왜란때 공으로 호성공신(扈聖功臣)이 되었고 완평부원군(完平府院君)에 책봉되었다.

그에 대한 선조의 신임은 남다른 바가 있었다. 상신사택(相臣賜宅)은 조선왕조 전시대를 통하여 성종때의 황희(黃喜), 선조때의 이원익, 숙종때의 허목(許穆), 단 세 번밖에 없는 일로서 그의 청렴한 관직생활이 얼마나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고귀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선조는 돌아가기전 세자에게 세신 가운데 이원익이 특출한 사람인데 과인이 제대로 스지 못하였으니 앞으로는 그에게 예를 후히하여 성심껏 하라고 타일렀다고 한다.

또한 관직을 기필코 사양하는 그에게 “경은 종척대신으로 나를 버리고 장차 초나라로 갈 것인가 진나라로 갈 것인가”하며 간곡히 말렸다는 실록의 기사도 보인다.         


<다음호에 계속>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5년 10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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