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포천에는 국보나 보물에 버금가는 암각문이 있어 자랑스럽기 그지없다. 우리 한반도의 최고(最古)의 암각문은 강원도 양양 바닷가에 있는 신라 화랑들의 암각문인데 세계에 자랑할만한 암각문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내 고향 포천에는 ‘옥병동(玉屛洞) 암각문’, ‘금수정(金水亭) 암각문’, ‘백로주(白露洲) 암각문’,‘추동리(秋洞里) 암각문’, ‘화봉산(花峯山) 암각문’, 등 5개 처에 암각문이 있는데, 그 가치가 세계적이라는 점을 명심(銘心) 할 필요가 있다. 다행이도 1996년 포천문화원(당시 최종규원장님)에서 강남대 홍순석 박사(문학박사)와 김희찬 박사에게 의뢰해 제작한 ‘포천금석문대관’이 있다는 사실은 한국 금석문 연구의 획기적인 역사라 아니할 수 없다.
금석문(金石文) 자체도 중요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면 훼손될 것이니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성해응이 지은 동국명산기 창옥병조에 보면 ‘선조가 박순을 일러 말하기를 송균절조(松筠節操) 수월정신(水月精神) 이라 하였다. 우옹이 써서 산금대와 주경대 중간에 새겨놓았다’고 하였다. 이글의 우옹은 바로 우암 송시열을 지칭한다. 옥병동 암각문은 선조의 윤음(宣祖之綸音)을 비롯하여 산금대(散襟臺), 토운상(土雲床), 와준(窪尊), 청령담(淸 潭), 이양정(二養亭) 등이 있는데 당대의 최고의 명필과 최고의 문장가들의 글이여서 느끼는 바가 놀랍도록 크다.
글 아는 사람 옥병동 암각문 아니 보고 어찌 글을 읽고 썼다 하겠는가?
금수정(金水亭) 암각문은 당대의 최고의 문장가 양사언선생의 글을 최고의 명필 한석봉 선생이 썼다면 놀라지 않을 사람 있을런가? 동천석문(洞天石門)을 비롯하여 회란석(廻瀾石), 금수정(金水亭), 금대(琴臺), 무릉(武陵), 증금옹시(贈琴翁詩), 경도(瓊島), 준암(尊巖) 등이 있는데 ‘준암’은 ‘술동이 바위’란 뜻이어서 재미있으며 일일이 설명하기에는 지면이 모자라 안타깝기 그지없다.
백로주(白露洲) 암각문은 성해응의 글로보아 우암, 백주, 용주, 감호의 절구를 새겼음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철원부사 동강(東岡)이 쓴 백로주(白露洲)를 비롯하여 소주(素洲)가 쓴 우암외 세분의 절구를 차운한 글이 있고 만세입극(萬세立極), 중성공지(衆星控之) 그리고, 평양북신(平陽北辰), 외 북신석화서문인대명(北辰石華西門人帶銘)이란 각문(刻文)이 있다. 또 추동리 암각문은 화서대명(華西帶銘), 화서서수명(華西書手銘), 식여(式閭) 등이 있는데 병인양요(1866년) 신미양요(1871년) 전후에 암각된 이항로가 제자 최익현, 유기일, 아들 이승용과 연명해서 새겨 놓은 것이다. 송대의 대표적인 유학자 주돈, 장재, 정자, 주자의 인품과 학문적 특징을 집약 칭송한 내용이라 한다. ‘식여(式閭)’는 스승 화서(華西)선생의 글에 경의(敬意)를 표하라는 최익현의 글이라 한다.
화선문인(華西門人)들이 화봉산(花峯山)에 와서 고종 30년 새긴 암각문이 있다. 유기일(柳基一)의 글씨이다.
‘대명천지(大明天地) 영력일월(永歷日月) 조요학공(祖堯學孔), 경승백나(敬勝百아)’ 최익현 위 유기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