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방학도 막바지인가 봅니다.
아버지는 늘 날이 밝기 전 우리 형제들을 깨워 참새들을 쫓으라시며 한사람씩 갈라 벌판으로 내 보내셨습니다.
우리 논은 부대 뒤에 있는 큰둔지라 불리는 뒷둔지와 작은 둔지, 그리고 마을 앞벌에 있는 왯둔지 세 군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세 군데의 논은 모두 소작하는 논이었기 때문에 참새 떼들이 빨아먹어 농사를 망치면 우리 집이 굶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논 주인한테도 크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새를 쫓는 일은 농약을 치거나 풀을 매는 일보다 중요합니다.
참새 떼들은 주변에 있는 군부대의 처마 밑 기왓장 속이나 노간주나무 속에서 잠을 자고 아침 일찍 주린 배를 채우러 벌판으로 떼 지어 날아갑니다. 대략 수천 마리쯤 되는 참새 떼는 한번 앉으면 이제 막 벼 이삭이 패어 달콤한 쌀물이 차 오르는 벼이삭을 아예 쭈욱쭈욱 빨아먹습니다.
한 번 새떼에게 빨린 논은 추수를 포기하거나 소출이 반도 거둘 수 없었기 때문에 부모들은 새벽이면 아이들을 깨워 논으로 참새를 쫓으러 내 보내시는 것이랍니다.
우리들은 낮에도 논가에 만들어 놓은 새막에서 놀며 새막에서 공부를 합니다.
참새 떼를 쫓는 데는 별의별 수단이 모두 동원됩니다. 허수아비는 아주 고전적인 방법으로 영리한 참새들은 금방 알아차리고 허수아비를 무시하며 논으로 내려앉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납짝한 비닐 끈을 논 전체에 마치 바둑판에 금을 긋듯 쳐놓으셨습니다.
지는 아침 일찍 곤하게 자고 있는 친구 집의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여보게, 여보게 아무개 있나? 큰일났네 어서 나와 보게!”
그렇게 연거푸 부르는 소리에 안에서는 잠을 자던 아버지의 친구는 잠결에 말고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리므로 무슨 일이냐며 잠옷차림으로 놀라 방문을 열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내 더위 사가게!”
“저런 경을 칠 사람 같으니?”
안에서 대문을 열고 나오며 아버지 친구가 대꾸하였고 이내 낄낄거리며 서로 장난을 하십니다.
더위팔기는 우리 민족의 해학적이고 자연 친화적인 풍습이지요. 가을이 되어 벌판에는 벼가 누렇게 무르익어 갑니다.
콩들은 정오의 따가운 햇살을 이기지 못하고 입을 벌려 전설을 토해 냅니다.
추수를 하려면 여름내 파이고 돌이 튀어나온 마당을 손질해야 합니다.
마당을 손질한다는 것은 황토 흙을 파다가 마당을 질 들이는 일이었는데, 마당을 질들이고 나면 마치 아스팔트 포장을 한 양 반질반질하여 도리깨로 두드리고 바숨 마당을 몇 차례씩 하여도 마당이 점점 굳어질 뿐 상처가 나질 않습니다.
황토 흙은 도장골 위의 흙이 가장 좋았다. 그 흙은 색깔도 좋으려니와 우선 입자가 고와 서로 엉겨 붙는 점성이 강하다고 아버지는 말씀하십니다.
도장골이란 지명은 옛날 도기(옹기)를 굽던 장인이 살았던 데서 유래된 지명이랍니다.
이곳 도장골 주변의 논은 한번 물을 대어 놓으면 아무리 가물어도 한달 씩 물이 참아주었기에 고래실이라 하여 가장 좋은 논으로 손꼽힌답니다. 이곳 주변의 밭에 고구마를 심으면 색깔이 빨간 밤고구마가 됩니다.
아버지께서는 그곳에서 빨간 황토 흙을 손수레로 예닐곱 수레 실어다 마당에 고루 펴고 질을 들일 준비를 하십니다. 그리고 마당의 가장자리를 두둑이 둑을 만들고 우물에서 열심히 두레박질을 하여 물을 퍼붓습니다.
물이 어느 정도 논처럼 차면 아버지와 나는 맨발로 들어가 찌걱찌걱 밟아 흙에 물을 먹이지요. (계속)
김 순 진 시인, 소설가, 수필가 http://cafe.naver.com/yob51 011-9123-4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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