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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조 문학, 그 역사적 마음 쓰기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5년 10월 11일

동시대인 마음 쓰기와 함께
전시대인 마음 쓰기도 필요



홍 을 표
이해조문학회 회장
포천중문의과대학교 사무처장


‘몸은 보이는 마음이고 마음은 보이지 않는 몸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여기에 귤이 한 개 있습니다. 눈을 감고 손에 잡아 보십시오. 엄지손가락으로 귤 표면의 질감을 느껴 보십시오. 그리고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 보십시오. 어떤 향기가 납니까? 또 귤을 까서 한 쪽을 입에 넣어 보십시오. 어떤 맛이 느껴집니까? 이 모든 것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면 실제로 어떤 반응이 옵니까? 인간의 뇌는 가상과 실제를 구별하여 반응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플라시보 효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진짜 약과 가짜 약을 준 두 부류의 환자들에게 나타난 반응은 물론 진짜 약을 먹은 환자들에게 좋은 결과가 더 많이 나왔겠지만 가짜 약을 먹은 환자들에게도 무려 35%의 치료 효과가 나왔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이 실제로 몸에 작용하는 증거입니다.

여러분 마음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어디에 있을까요?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철학자들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내려 왔지만 아직도 마음의 실체는 모릅니다. 여러분 마음이 어디 있을까요? 마음 심心자 심장을 닮았다고 심장에 있다고 한다면 심장을 해부해보니 피 밖에 없어요. 그러면 마음은 뇌에 있을까요? 뇌는 분명 신경세포를 작용하여 우리의 마음의 작용을 통제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뇌에만 있나요? 저는 우리의 마음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100조 개나 되는 세포에 모두 나누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서양의학이 발달하면서 해부학적인 기술과 세포 단위 나아가 분자 원자 단위까지 나아갔지만 몸의 실체는 파악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몸과 마음에서 마음은 배제하고 몸을 잘게 나누어 파악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현대 물리학에서도 원자 보다 더 작은 소립자 단위 이하로 가면 결국 아무 것도 없는 상태가 된다고 합니다. 불교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경지이지요. 결국 몸과 마음은 하나입니다. 그것을 하나 되게 하는 것이 감각입니다.

저는 문학은 인간의 삶의 구체적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영국의 감각론은 민주주의를 만들었고 독일의 관념론은 마르크시즘과 히틀러의 독재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우리 인간이 최후로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오감밖에 없다는 감각론과 경험주의 철학에 동조합니다. 오감을 예민하게 하여 직관력을 키우고 나아가 예지력과 통찰력이 생기면 인간의 가장 고등적인 창조행위가 나타나게 됩니다. 문학이 바로 그 행위입니다.

현대의학은 몸의 치료에 많은 진전이 있었지만 마음의 치료에는 아주 초보 단계에 있습니다. 이제 마음의 치유가 오히려 몸의 치유보다 더 중요합니다. 이 마음을 치료에 응용하는 분야들이 있습니다. 미술치료, 음악치료, 그리고 무용치료 등이 그런 것입니다. 저는 문학의 효용도 마음의 치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방주사는 몸에 미리 약한 세균을 넣어 세균에 대한 면역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문학 작품을 읽으면 많은 악인들이 나옵니다. 우리는 이 악인들을 통해 우리 마음에 예방주사를 놓는 것입니다. 저는 인간의 모든 행위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긍정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인간의 행위를 이해하고 동정하면 우리의 마음이 정화됩니다.

문학의 이러한 정화 작용이 더없이 요구되는 때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오염은 환경오염보다 심각합니다. 신문에 대서특필되었지만 일전에 어느 유치원 연수 행사에서 대형 화재가 난 일이 있었는데, 살아남아 화상으로 고생한 여러 아이들은 주변의 혐오와 냉대 그리고 멸시에 견디지 못하고 캐나다로 이민을 갔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참으로 따뜻하게 대해주었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렇지 못한 것입니까? 우리의 마음이 심각하게 오염된 증거입니다. 그네들처럼 왜 얼마나 아팠겠냐며 동정하며 이웃해 주지 못하는 것입니까? 마음을 쓰지 못하고 외형적인 몸만 보는 것입니다. 마음을 쓰는 훈련을 하는 것도 문학을 통하여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의사소통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분석한 자료가 있는데 말은 7%, 태도와 몸짓은 55%, 그리고 목소리가 38%이라는 것입니다. 일상의 말의 전달력은 미미한 정도입니다. 그러나 문학은 구체적인 삶입니다. 논설문이나 설명문과 문학 표현이 본질적으로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논설문과 설명문은 주장과 의견으로 이루어진 보편적 관념 덩어리들이지만 문학의 대표적인 장르인 소설에서는 구체적인 인물과 줄거리 그리고 사건과 배경이 나타나 있습니다. 문학에서는 인간의 언어가 가지고 있는 전달력을 최대한 고양시킵니다. 일상어의 7% 전달력을 100% 전달력으로 높이기 위해 오감과 오성을 통한 구체적인 삶의 내용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해조 문학은 우리 마음의 뿌리이다.

이제 이해조 선생에 대하여 이야기하겠습니다. 저는 이해조 선생의 40편이나 되는 작품 중에 불과 7편밖에 읽지 못했기에 평론가적 입장에서 서서 이해조 선생의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어떠한 평론가의 견해에 의하여 이해조 선생의 문학을 평가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는 수많은 이해조 관련 논문 중에 작품의 이해를 위해 읽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단지 이해조선생을 재평가하는 데 큰 업적을 남긴 최원식 교수의 글을 읽었지만 그것도 저가 직접 작품을 읽기 전에는 참고하지 않았습니다.

저가 읽어본 바로는 이해조선생은 기자로서 구체적인 인간의 삶의 내용을 근거로 하여 당시의 사회상과 시대상을 정확하게 그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전공한 저로서는 다른 어떤 역사서보다 더 생생하고 살아있는 인간상과 시대상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백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볼 수 없고 당시에 비디오 같은 것이 있어 촬영해 놓지도 못했으니 당시로 돌아갈 방법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해조선생의 문학을 통해 우리는 당시의 인간들의 내면에 들어가 볼 수 있고 당시의 시대상과 정치적 과제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대화 속에 나타난 어휘를 보면 인물의 성격과 계급에 따라 실로 다양하고 풍부한 어휘들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이보다 더 풍부한 우리말의 보고(寶庫)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이해조선생에 대하여 알고 싶으면 다른 사람들의 평론이나 해설에 의지하지 말고 직접 텍스트로 들어가십시오.

이해조선생은 제가 보기로는 천재라고 밖에는 달리 말할 수 없습니다. 세부 묘사에서의 치밀성과 무당, 기생, 지관, 종 등 다양한 인물들의 성격 묘사 등에 이르면 도저히 전통적인 양반 가문의 선비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이고 현대의 작가들도 가기 힘든 경지에 이른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지요. <화성돈전>, <철세계> 등의 외국 소설 번역서를 낸 것을 보면 그는 이미 세계적인 안목을 가진 분입니다.(이 두 작품과 <자유종>은 일제에 의해 금서가 되었다.) 그는 당대 유명인사들과 교류하여 근대 사상과 시대조류 그리고 세계정세에 대해 배웠습니다. 온건개화파의 거두 김윤식은 그에게 큰 정신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동도서기, 중체서용 즉 문물과 제도는 서양 것을 받아들이지만 정신적인 가치만은 우리 것을 지킨다는 입장입니다. (그의 이러한 입장은 <구마검> 등의 소설에 잘 나타나 있다.)

이해조 선생은 단순한 소설가가 아니라 기자로서 국채보상운동 등 현실 참여를 하고, 민족의 앞날을 걱정해 교육사업에도 헌신합니다. 이해조선생의 문학과 인생에 대하여 한 마디로 말할 수 없습니다. 너무나 큰 분입니다. 우리는 겨우 코끼리 다리 만지기 식으로 이제 조금씩 이해하고 배우고 있는 입니다. 저의 이해조문학회에서는 매달 한편씩 회원들의 직접 읽고 토론합니다. 각자의 입장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가 보지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이해조문학을 이해해가고 있습니다. 당시에 민중들이 그의 소설을 읽고 느꼈을 그런 느낌을 우리도 느끼기 위해 각자의 감각을 동원합니다. 저는 이해조선생의 문학이 주는 계몽적 성격이 있음에도 인간에 대한 치열한 탐구에 그의 문학의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소설에는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과 역사적인 한계에 갇힌 인간의 모습이 함께 녹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모습이고 우리들의 조상의 모습이고 우리의 뿌리이기도 합니다.

동시대인에 대한 마음 쓰기와 함께 전시대인과의 역사적인 마음 쓰기도 필요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실상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조건입니다. 역사 때문에 마음 상하는 이 시대에 그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이해조선생의 문학이 큰 효능을 다하리라고 생각합니다.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뛰누나!’(워즈워즈)

몸을 통해 나타난 감각은 우리의 마음을 뛰게 만듭니다. 몸은 구체(具體)이지 추상이 아닙니다. 인간의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몸일 뿐입니다. 저는 문학은 인간에 대한 연구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은 보이지 않는 인간의 마음을 눈에 보이는 구체(具體)로 드러냅니다. 그래서 몸을 다루는 의학이 구체적인 학문이듯이 인간의 마음의 전모를 파헤치려는 문학도 구체적인 학문입니다. 저는 이해조문학에서 바로 100년 전 인간들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들의 마음의 심층 구조와 그 뿌리를 이해하게 됩니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5년 10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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