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부터 20여년간 공무원으로 군내면에서 근무하다가 지난 1983년 사무관으로 정년퇴임한 이창수(75·군내면 명산리 270)옹은 1960년대 새마을운동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결과 오늘날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터전을 마련했다고 한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모내기 전 보온 물 못자리를 봐야 한다고 독려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농사도 기계화가 돼 일손이 남아 돌아가고 있다고 한다.
또 울타리 개량을 위해 공무원들이 직접 나서서 부실한 울타리를 무조건 부수고 다닌 기억도 있다. 부숴진 울타리를 보며 집주인이 개량할 수 있도록 독려한 것이다.
초가집도 지붕개량에 나섰다. 마차가 다니는 소로를 확장해 차량이 마음놓고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공무원으로 그래도 보람 있었다고 생각되는 것은 어렵게 일할 때는 힘들었지만 지나고 보니 그때 하기 잘했던 것 같다. 어렵게 일한 만큼 보람도 큰 것 같다고 한다.
또 면사무소 호적계장으로서 일할 때 호적등본 하나 발급하는데 가족이 많은 경우 하루 종일 소요됐던 기억도 있다며 지금 생각하면 우리사회가 아주 급속도로 발전한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하나의 웃을 수 있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평소 이광수 전집에 나오는 “내가 한 일은 인이 되고 씨가 되어서 잘하면 잘한만큼 못하면 못한만큼 되돌려 받는다”는 말을 생활신조로 삼아 생활해 온 이 옹은 지난해 중환자실에 입원 치료를 받을 정도로 앓은 적이 있지만 그래도 건강한 편이라고 한다.
‘정직하게 살자’를 가훈삼아 3남2녀를 교육하고 출가시켰다는 이 옹은 현재 포천한시사 회원이며 포천향교장의를 지냈으며 포천유도회 군내면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공부하는 즐거움에 대해 이 옹은 “아무일 없이 노는 사람보다 한 글자라도 익히는 즐거움이 있고 남들이 물어볼 때 자신 있게 답해주는 것이 즐거움”이라고 한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이것만은 변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이 옹은 “학생들이 학교에 빈 가방을 다니는 것은 반드시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자님은 가죽으로 엮은 책끈이 세 번 끊어지도록 공부했다’며 책을 들고 다니면서 공부를 해야 제 맛이 난다고 한다. 책과 늘 가까이 함으로써 그만큼 생각의 깊이와 폭이 넓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산초등학교 2학년때 권춘택 선생님이 구구단을 100번 써오라는 숙제를 토요일에 내주고 월요일에 검사한다고 하여 100회를 써 본적이 있다는 이 옹은 그날 수업할 것을 미리 30~40번씩 읽어보고 간다면 학원이나 과외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며 공부하는 법을 귀뜸한다. 당시 구구단 100회 써온 학생은 3~4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포천신문에 대해 이 옹은 “잘 하니까 바라는 것은 없으며 포천신문이 하는 일에 대해 칭찬이 자자하다”고 밝혔다.
한시백일장에 참가하고 포천에서 개최하는 한국민속예술축제 등 큰 행사에 초대를 받았다며 가서 구경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이 옹은 새벽5시에 일어나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평생을 책을 읽고 한시를 공부하며 살아가는 이 옹에게서 포천 선비정신을 새삼 다시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