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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창종의 <포천 이야기> (140) ‘해방 3년간’의 포천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5년 08월 22일

1950년대 소설가 이무영 님.

이무영 님은 소설의 주 소재였던, 농촌 소설을 내 던지고 사상계사를 통해, ‘해방 3년’이란 장편 소설을 내 놓아 화재가 되었던 생각이 난다.

님은 ‘해방 3년’을 통해 내 조국의 해방 후, 혼란기를 적나라하게 그림 그리려고 하였다.

내 고향 포천도 예외는 아니었다. 8·15 해방의 그날, 일본 소화 왕의 항복 방송이 울리고 한 달 후, 미군이 진주하여 한내 개울가에다 천막을 치고 주둔하였으며, 장교들은 포천경찰서 유도 연습장에서 숙소를 정하고 살았다.

당시, 포천 출신 대학 졸업생이었던 박승방, 권혁도, 김일동, 최학규 님 등은 미군들을 찾아가 포천의 사정을 설명하고 통역도 하였으며 새로 임명된 군정청 임명 군수 이재신 님은 미군 중위, 군정 파견관의 지시를 받아 군정을 펴 나갔다. 그런데 내 고향 포천에는 큰 범죄사건이 터져서 군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였다.

P교회의 청년회장 ○씨가 ‘S장로님’께 ‘○속장’의 따님과의 결혼자금을 빌려 달라고 청했다가 거절당하자, 분개하여 도끼로 살해하는 사건이 터지는가하면 군내면 R씨가 남로당 골수당원으로 활약중, 포천경찰서에 의해 검거 신문을 받던 중,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으며 또, 신북면 심곡리 국사봉 기슭에서는 남파 무장 간첩 ‘HJ’가 출몰하여 거점을 확보하려다가 경찰토벌대의 추격 끝에 북으로 도주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38도선이남 인구 5만의 소도읍이었던 내 고향 포천으로서는 감당키 어려운 큰 시련이었으며 대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청년회장의 살인사건은 범인을 추격 끝에 검거 무기징역형을 받았으며 신북면 무장남파간첩사건은 거점책 H씨를 체포해 사형시켰으며, 군내면 남로당 골수당원의 경찰 신문 도중 사망한 사건은 전국의 남로당원들이 운집하여 대대적인 시위와 함께 장례를 치르는 대 소동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 후, P초등학교 5만분의 1 ‘한반도 남부 지도’의 월북 사건(6·25가 발발하자 남침 작전지도로 활용되었을 것이라고들 하였음), S초등학교 야심한 시각의 ‘인민공화국기’게양사건, 구읍리 포목점 대문의 북괴찬양 포스터 부착사건, 여관 종업원을 가장한 여간첩 검거 사건, S초등학교 ‘나아가자 동무들아’ 불온 삐라 습득 사건 등, 크고 작은 사건들이 발생하여 포천군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였다. 38도선 접경인 성동교, 양문리, 38교, 오가리 인민군 38경비대의 잦은 남침 사건 등도 영중면, 신북면, 창수면민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고 가기도 하였다.

‘해방이 되면 내 조국은 행복하게 사는 평화의 나라로 온 국민을 기쁘게 하겠지…’하는 희망과 기대를 가졌던 내 고향 포천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어지럽힌 사건들이었다. 옛날 해방 3년을 회상하면 악몽같이 떠오르는 사건이었다.

필자연락처 02-932-2434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5년 08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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