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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획]우리고을 포천의 문화유적⑦- 인평대군 치제문비(麟坪大君致祭文碑)上

효종이 동생 인평대군 영령에 유제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5년 07월 30일


최 종 규
포천명유회 회장


인평대군은 인조의 셋째아들로 효종의 아우인데, 1622년(광해군 14) 출생하여 1658년(효종9)에 졸하였다. 대군의 이름은 요, 자는 용함이며 호는 송계이다.

1630년(인조80 인평대군에 봉해지고 1636년(인조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부왕을 남한산성으로 호종하였다. 글씨,그림에 능했으며, 학문도 심오하여 제자백가에 통하였다. 시호는 충경이다.

인평대군의 치제문비는 묘소 좌측 아래 약 50m지점에 있는데 정면 2칸, 측면 1칸의 7평 남짓한 비각을 만들어 2기를 그 속에 안치하였다. 이 비는 1978년에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1983년 비각을 보수하고 단청하였다.

제1기는 인평대군천장시별견우승지치제문이란 제목으로 되어 있는데 비문은 1693년(숙종 19)에 쓰고 1724년(경종4)에 세운 것이다. 비문의 전면은 효종의 어제어필이고, 후면은 숙종의 어제어필이며, 전액은 서평군 효가 썼다.

제2기는 왕이 신하를 보내어 치제케하고 그 제문을 적은 것인데 상단은 영조의 어제어필이며 하단은 정조의 어제어필이다.

포천시 신북면 신평리 산 46-1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화강암 재료에 제1기는 높이 200cm, 너비 88cm, 두께 34cm 규모이며 제2기는 높이 204cm, 너비 87cm, 두께 38cm 규모이다.


제1기 전면

유세차 무술 7월 병신삭 초3일 무술에 국왕(효종)은 내시 윤완을 보내서 인평대군의 영령에 유제하노라.

오호라! 세상에 뉘라서 부모 형제가 없으리오마는 어디에 우리 형제와 같은 정애(情愛)가 있었겠는가? 어릴때부터 나이의 차이가 많지 않고 성품도 화순(和順)하여 함께 어울려 놀면서 우애롭고 다정한 마음이 두루 극진하였고 일상의 틀을 벗어나 한 곳엣 먹고 자고 하면서 어디 한번이나 떨어져 보았던가? 스스로 생각하기를 인세(人世)의 즐거움이란 항상 이러한 것인줄 알았더니 상난(喪亂)을 당하여서야 비로소 세간의 괴로운 경황이 아주 많음을 알았지 그 뒤로는 걱정과 근심에 빠져 즐거움이란 모르고 지냈는데 적인이 창궐하자 집안이나 나라가 거의 결단이 나게 되어 자네는 남고 나는 북쪽으로 갔는데 창릉 언덕에서의 이별은 천고에 듣지도 못했던 바로써 창자가 끊기는 듯 눈물만 쏟아지고 땅을 치고 하늘에 통곡해도 요산 압수는 길이 삼상(參商:하늘의 동서 끝에 있어 한번도 만나지 못하는 두 별의 이름)의 헤어짐이 되었었고 용루와 봉궐은 한갓 꿈속에서만 오락가락하였지 시국이 하도 사나웁자 그대마저 북으로 와서 절역에서 되려 형제까지 단란을 이루게 되었는데 비록 오랜 헤어진 심회는 위로가 되었으나 지존의 곁에는 사람이 없게 되었으니 적막한 심궁에서 오직 새들만을 벗하신단 말씀을 생각하면 오장육부가 찢어지든 듯하였으니 어찌 차마 더 말하랴? 저들이 들고 날 제 번번이 함께하여 먼 길을 달리자니 빙설을 무릎쓰는 고초를 면할 수 없었으매 이것이 그 적상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네.

오호라! 하늘이 재앙을 뉘우쳐 학가(鶴駕: 세자의 수레)가 돌아올 때 우리들도 함께 돌아와 동서의 한 골목에 두 집 마주 보며 높다랗고 환하여 이제는 평생의 지락을 이루리라 기대했는데 이쩐 일로 백씨는 세상을 버리시고 나는 외람되이 부왕의 간탁에 응하여 갑자기 춘궁으로 들어갔으니 화조 월석에 손잡고 서로 모여 백중이 훈지(형제간에 다정함을 나타낸 말)로 오르내리며 주고 받던 즐거움은 모두 허사가 되었더란 말인가?

네가 항상 탄식하기를 “무슨 세상에 조물의 시기가 여기에 이르렀단 말인가? 동기간의 정은 하늘보다 중하다고 하지만 왕가의 예법이란 엄절한 것이니 어떻게 그전과 같은 즐거움이 있겠는가?”하면 나는 문득 서글퍼지면서 말하기를 “너는 그런 말 말아라 나도 임금의 자리가 즐겁지 않단다”하였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이나 했으랴 나이 40도 못되어 문득 아주 가버려 나로 하여금 네 면목을 보지도 못하게 할 줄이야 곡을 해도 응함이 없고 물어도 대답이 없으니 속마음이 찢기고 꺽이는 듯하구나.

오호라! 서적의 변은 말하기도 비참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기가 막히게 한다. 간사한 정상이 드러나 극형에 처해지고 그 한을 풀기는 하였으나 어떻게 나의 대에 이런 일이 있을 줄 생각이나 했겠는가? 지금도 노여움이 그때와 다름이 없다. 아들을 여윈지 오래지 않아 또 연산에 갈 일이 생겨 서로 대하고 훌쩍이면서 말하기를 “무슨 액운의 불행이 이토록 심하더란 말이냐?”하였는데 해마다 행역을 치르느라 한 해도 편안히 쉴 겨를이 없었으니 이별은 많고 만나기는 어려워 북쪽을 바라보며 탄식해 보지만 모두가 내 마음대로 하는 일이 아니라서 통박한들 어쩔 도리가 없었다. 먼 길에 녹초가 되고 수토에 상하여 영위가 손상되매 마침내 병근이 깊고 굳어졌던 것이다.

오호라! 나라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네가 반드시 갔었고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오직 나라에 충실하여 항상 말하기를 “나라 일이 이와 같으니 어떻게 살기를 바라랴?”하고 충분 강개한 마음을 버리지 않았다.

매양 북쪽 사람과 말할 때에는 일신의 이해는 돌보지 않고 옳고 그름을 가려 꺽임이 없었으나 그 성실함이 사람을 움직여 저들도 감히 위엄으로 검주거나 협박하지 못하고 너의 뜻에 고분고분 따랐으니 이 어찌 네가 두려워서 그랬겠는가? 너의 지성에 감동되어 그랬던 것이다. 참으로 이른바 귀신에게 물어 보아도 부끄러움이 없을 일이고 되놈들 나라에 가서도 행세할 만한 일이라 하겠다.

오호라! 너의 충성이 아니었더라면 경인년(효종 원년, 1650) 고굉(股肱:중신重臣)기구의 화에 누가 사이에 들어 무마했겠으며 가슴이 꺽이고 박절했던 이 마음을 누가 풀어주었겠는가? 현량이 가버렸으니 국가는 누구에게 의지할 건가? 시(詩)에 이르기를 공자유성(孔子維城: 공자는 나라에 간성이라는 뜻)이라 하였으니 이는 너를 두고 이름이나마 따라서 내가 비통한 마음을 금치 못하는 바이다.

지난해의 일은 말하기에도 곤욕스럽다. 이 일로 더욱 울분을 못 이겨 병이 짙어졌으나 그래도 누었다 일어났다 하여 마음쓰지 않았더니 초봄에 이르러서는 그대로 몸져 누워 위급한 증상이 마음을 놀라게 하는 바가 아닌 바 아니었으나 그래도 천도의 기대를 바랐으나 어찌 복선 화음이 헛된 말임을 알았으랴? 병으로 누운 되로 몇 달을 보지 못하매 울적한 마음으로 이기지 못하여 대신과 상의하고 가보니 병색은 이미 8,9분(分)이 없어져 이제는 병이 나아 출입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때만 손꼽아 기다리면서 마주 대하고 즐기려 하였더니 양순이 채 못되어 일조에 병이 덮쳤다 하여 정신없이 묻고 넘어질 듯 달려와보니 이미 미치지 못하였다. 구천에 한번 가니 종천의 슬픔을 어이하랴?

아! 경은 금옥같은 바탕에 덕이 있고 행산도 있었으며 효우 총명하고 순수 온량하여 장수를 누려야 마땅하였건만 어찌 이다지도 빨리 죽었단 말인가. 구슬에서 상서로운 빛깔이 부숴지고 칼날에는 광채가 사라지듯 어두운 긴 밤 적막한 유택만이 남아 나를 슬프게 하는도다. 지난 일 길이 그리며 죽음을 추모하자니 슬픔만이 남는다. 천륜의 서러움은 살을 에이는 듯하고 체악(형제의 비유)이 떨어지니 연리지(連理枝:서로 다른 나무의 가지가 맞닿아서 결이 통하여 하나로 되는 것. 여기에서는 효종을 의미함)시들어 간다. 마침내 형제는 적어져 나와 너 뿐이어서 경사가 있으면 서로 경하하고 걱정이 있으면 서로 걱정하였는데 이제는 누구와 더불어 기뻐하고 누구와 더불어 걱정할건가? 유유한 하늘이여 나 홀로 무슨 죄랍니까? 기가 막히고 가슴이 메여 눈물이 길길이 흐름도 알지 못하는구나. 외로운 고아와 애처로운 과처는 내가 모두 길러줄터이니 너는 염려치 말라. 너는 항상 가득 참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 겸허한 덕을 매양 길러왔건만 어찌 보답을 받지 못함이 이와 같단 말인가? 천도 무상하니 길게 호곡하며 하늘만 바라본다. 즉원한 날이 임박했는데도 어찌 나의 꿈에 들어와 평생의 지극했던 회포를 펴지 않는단 말인가?

낭낭한 웃음소리 귀에 들리는 듯 음용은 퍼뜩 퍼뜩 눈 앞에 아른거리는데 어찌 차마 잠시라도 잊겠는가? 일월은 지나쳐도 지극한 슬픔 억제치 못하고 형영으로 조상하자니 눈물이 퍼붓듯 할 따름이다. 나 역시 훌훌하여 세상일에 즐거움이 없으니 비로소 萬綠이 이로부터 헛됨을 알겠도다. 배는 야학으로 들어가고 이슬은 아침 풀잎에서 사라지는데 가성은 울울하고 잣나무 삼삼하구나. 혈혈한 네 혼백에 유유한 이내 심사여! 유명의 길 막히니 백년 동포의 정이 이로부터 영결이로다.

갑자기 여질에 걸러 친림의 예절도 뜻대로 되 지 않는구나. 오호라! 내 마음의 슬픔 어찌 끝이 있겠는가? 유한이 무궁하여 관원을 보내서 대신 올리는 바이니 경이 만일 지각이 있다면 나의 이 정성이 흠향할 지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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