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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창종의 <포천 이야기> (136) 포천의 선정비(抱川之善政碑)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5년 07월 12일

‘선정(善政)을 베푼 관원(官員)의 덕을 길이 전하기 위하여 세운 비석’을 선정비라고 한다.
또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라고도 한다.

영원히 잊지 못할 기념비라는 뜻이니 그 뜻이 더욱 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거창한 이름의 비석에 비하여 뚜렷한 선정 내용이 기록된 비문이 없다는 점에서 의문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뚜렸한 선정 내용을 남긴 선정비는 홍태윤(洪泰潤, 군수, 1878∼, 영평군 소재)의 선정비인데 극심한 흉년이 들어 양곡을 방출하여 백성을 구제하고 세금을 감면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한다.

현존하는 선정비로는 일동면 화대리 운담사거리에는 군수 이제원(李濟元)의 선정비(재임기간 1868년;고종5년 5월∼1873년;고종 10년 3월)인데, ‘행군수이공제원영세불망비 광서2년 병자5월)이라 명기되여 있다. 행군수(行郡守)란 군수직보다 높은 벼슬자격인데 낮은 직의 군수직을 명받아 왔다는 뜻이다.

5년씩이나 길게 근무한데 비해 공적이나 선정 기록이 없음이 아쉽다.(화강의비대좌와비신:142cmX48cmX23cm 크기) 선정비는 포천현감 이윤식(李允植)의 선정비로 건립 년도는 재임기간 중이던 1831년(순조 31년)이다.

또 1906년까지 철원도호부 관인면 탄동2리에 세워진 선정비로 조존일(趙存一:1803년∼1882년) 부사의 비이다.

1825년(순조 25년) 무과급제하고 1867년(고종 4년) 1월∼1869년(고종 6년) 4월까지 철원 방어사를 역임하고 가선대부에 이르는 81세의 높은 품계의 고관이지만 관인 땅의 행적은 기록이 없으며 ‘부사조공존일영세불망비(府使趙公存一永世不忘碑)’란 비문이 있고 125cmX52cmX22cm) 크기의 화강암으로 1868년(고종 5년) 재임 중 세웠다. 그밖에도 23개의 선정비가 소재 했다.(이간, 이공완, 이성구, 이현, 송시길, 권위기, 현감군수 등 등)
옛날(6·25 前)에는 포천읍 자작리 비석거리(국도변)에 선정비 비석들이 즐비했던 것이 생각난다. 지금은 군내면 구읍리에서 신읍으로 나오는 성황당 곁에 선정비가 줄지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옛말에 재임 중에 세우는 선정비는 현임 사도에 대해 백성들의 염원과 감사의 뜻이 담겨 있지만 재임 기간이어서 그 모양새가 좋지 않다. 퇴임 후에 이르러 지난 재임동안의 선정과 공적을 오랫동안 잊지 못하여 백성들의 자의(自意)에 의해 선정비가 세워지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포천현이나 영평군은 대개 양주목사나 철원도호부 소속이었던 관계로 만약에 포천현감이 포천현을 잘 다스리지 않고 못된 현감 노릇을 하는 경우 포천에 살던 전직 양반네들이 못된 현감을 가마에다 실어다가 상급관가가 있는 남쪽 축석령 고개 넘어 양주땅에다 내다 벼렸다고 한다. 양반고을의 권위 있는 탐관오리 추방운동이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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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5년 07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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