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었다. 살아서 숨 쉰다는 것이 언제나 삶과 죽음 사이에 어정쩡하게 앉아 철저하게 스스로를 비하해 은폐시키며 전혀 다른 각본을 숨차게 찾으며, 삶을 산 게 아니라 버틴 것이었다. 국문과를 나온 것도 아니고 그저 노가다 잡부인 내가 그 와중에 시를 사랑하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몇 안 된다. 당선을 기뻐해 줄 부모도 언니,오빠도 없다. 그래서 나의 감사와 기쁨은 다른 사람의 세 배다. 중학교 1학년때 국어 선생님이 시 50편을 외우면 시인이 될 수 있다고 하여 그날부터 외운 시를 일기장에 열심히 썼던 기억이 난다. 1년쯤 지나 세어 보니 시조까지 100편 정도. 선생님께 전화해 시인이 된 것 같지가 않다고 하였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나 시인이 되긴 되었다. 적어도 날 믿어주는 한 구석은 생긴 셈이다. 할 일도 많아졌다. 지금부터 들어야 하는 건 붓이 아니라 칼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칼이 메스이길 바란다. 정교한 기술과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메스, 아픈 누군가에게 위로와 치료가 되어 희망을 전하는 메스, 좋지 않은 건 베어 내야만 하는 메스, 또 섣부르게 잘못 사용하면 반드시 책임을 물어 온다는 것을 아는 그런 메스를 들기 원한다.”
월간 문학세계에 등단한 김미화(35.사진) 시인의 당선소감이다. 김 시인은 오랜세월 동안 고통으로 괴로움을 겪고 있는 자신을 받아 준 곳은 오직 포천뿐이라며 고향보다 더한 애정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라는 김 시인은 포천에 둥지를 틀고 있던 20대 중반에 써 놓은 시 300여편 중에서 10편을 골라 보낸 작품 중 다섯 작품이 당선되어 등단하게 되었다. 이때는 사느냐 죽느냐로 깊은 고민을 할 때였다고 한다.
김 시인이 추구하는 작품세계는 한마디로 ‘人類愛’다. 인류애의 실천이 어려운 것은 국가주의, 민족주의 때문이라고 한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김 시인은“포천은 축석고개를 기점으로 더 이상의 세계를 보려 하지 않는다”며 포천시민의식의 제고를 위한 나름대로의 역할을 감당해 보고 싶다고 밝혔다.
특히 ‘포천으로 오세요’라는 주제로 작품활동을 함으로써 생에 쫓겨온 작가 자신을 안아주고 감싸준 포천이 더 아름다운 도시, 돈 많은 도시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