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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우리고을 포천의 문화유적 ③ - 반월성지(半月城址)

포천일대와 반월산성이 전략적 요지로 인식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5년 06월 22일

사적 제403호로 지정된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 산 5-1 소재 반월성지는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11만6천305㎡ 규모로 석재로 축조했다.

반월산성이 위치한 구읍리는 조선시대 포천현의 관아가 있던 곳으로 이 지역의 정치·경제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반월산성은 바로 이 구읍리의 뒤편에 있는 반월산(일명 청성산, 283m)의 7부에서 9부 능선 위에 위치하고 있는 퇴뫼식 산성이다. 산성의 형태가 마치 반달과 같아 반월산성 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반월산의 동쪽과 서쪽은 험준한 산맥으로 차단되었고, 그 사이에 축석령에서 시작된 포천천이 남에서 북으로 흘러가면서 분지를 형성하고 있다. 반월산은 이 분지의 한 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동서남북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전략적 요지가 되는 것이다.

인근에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반월산성은 궁예에 의하여 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성내에서 출토되는 유물로 보아, 이 산성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국여지승람』에도 산성이 있다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미 이때는 폐성이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여지도서(輿地圖書)』, 『대동지지(大東地志)』, 『견성지(堅城誌)』등 후대의 문헌은 반월산성에 대한 기록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 기록들을 종합해 보면 1618년(광해군 10) 판관 이성구의 책임 아래 개축이 이루어져 1623년까지 사용된 것으로 나타나며, 둘레가 1930(1937)척이고, 성내에는 2~3개소의 우물 및 장령(張領), 삼대(三臺), 기우제단(祈雨祭壇), 성황사(城隍祠) 등이 있었다고 한다.

이 산성은 1994년에 포천시와 강남대학교 한국학연구소에 의하여 지표조사가 실시되어 이미 보고서가 간행되었고, 1995년부터 단국대학교 사학과 학술조사단에 의하여 발굴 조사되었다.

반월산성은 둘레가 1천80m, 동서 490m, 남북 150m의 규모로 동서가 길쭉한 반원형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성곽 내에는 문지 2개소, 치성 4개소, 건물지 6개지역, 우물지 및 수구지 2개소, 장대지 및 망대지 2개소가 있다.

남문지는 남벽에서 서쪽으로 회절하는 지점에 설치되었다. 반월산의 서북편에서 서북벽을 따라 발달된 능선을 통하는 문이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원래 반월산성의 출입문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북문지는 북벽 평탄대지 위에 설치되어 있다. 이곳은 평탄대지에서 북벽을 따라 동쪽으로 경사가 시작되는 지점으로 주계곡 방향에서 동쪽으로 약간 비껴선 위치에 설치되었다.

치성은 남치성, 서치성, 북서치성, 동치성 등 모두 4개소가 확인되었다.

성내부의 건물지 조성은 2가지 형태가 파악되었다. 첫 번째는 평탄대지를 이용하여 그 주변지역을 정지하고 건물지를 조성한 곳이다. 헬기장 주변, 망대지 후편, 현재성으로 오르는 출입 도로가 통과하는 남쪽지역 등이다. 두 번째는 성벽을 축조하는 과정에 생겨난 평탄지에 건물을 조성한 것이다. 북벽의 장대지로 추정되는 지역, 동벽내의 계단식 건물지 등이 이에 해당된다. 각각의 건물지에는 몇 채의 건물이 조성될 수 있을 만큼 범위가 넓어서 성내에는 총 십여채가 넘는 건물이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장대지는 모두 2개소가 확인되었다. 서쪽의 장대지는 성의 서편 돌출형 대지의 중심부에 조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이곳에는 헬기장이 들어서 있다. 크기는 동서 18m, 남북 13m이다. 과거에도 이 부근은 다른 지역에 비하여 높이가 높았던 것으로 생각되었는데, 발굴 조사시 현재의 헬기장이 암반 위에 건설된 것이 조사되어 원래부터 높은 지역임이 확인되었다.

북쪽의 장대지는 성내의 가장 높은 지역에 있다. 현재에도 남북 13.4m, 동서 30.1m의 장방형 대지가 형성되어 있다. 이 곳에서는 서,북,동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우물지는 2개소가 확인되었다. 1번 우물지는 현재 교통로가 개설되어 있는 남벽에 비교적 넓은 평탄 대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이 대지 북쪽에 우물지가 있다. 우물은 원형으로 크기는 직경 약 2m정도이다. 6-7단의 석축은 수평을 유지하면서 막돌쌓기 방법으로 둥글게 축조하였다.

2번 우물지는 현재 교통로로 이용되는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약 90m 지점에 위치한다. 우물의 형태는 원형으로 직경 80cm, 높이 93cm이다. 6단의 석축을 둥글게 쌓았으며 상면에는 토사가 덮여 있다.

반월산성에서는 삼국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기와 및 토기편이 수습되었다. 특히 기와가 많이 수습되었는데,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것들이 확인되었다. 특히 1995년 발굴 조사시에 발견된 ‘마홀수해공구단(馬忽受解空口單)’이란 7자가 새겨진 명문기와는 문헌사료가 빈약한 고대사에서 사료적 가치가 큰 것으로 주목된다.

지금까지 조사 결과를 분석하여 볼 때, 반월산성은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이 분명하다고 하겠다. 이 성이 처음 축조된 것은 5세기 중반 경으로 생각되며 고구려, 신라를 거쳐 통일신라시대까지 사용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시대에는 개경이 수도가 됨으로써 전략적 가치가 줄어들어 폐성이 되었다가, 조선시대 1618년(광해군 10) 후금(後金)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하여 개축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반월산성은 조선시대 서울에서 함흥으로 가는 대로상에 축조된 성곽이다. 이는 삼국시대에도 마찬가지로 북측에서 남쪽으로 가던지,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던지 꼭 지나가야 할 요충지인 것이다. 따라서 이 교통로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에서 축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포천 일대에 산재하는 여러 산성의 중심이 되는 성으로 파악된다. 포천분지 일대에서 구읍리를 중심으로 한 지역이 고대부터 정치·경제의 중심지였음은 앞서 밝힌 바 있다. 고구려시대 포천은 마홀군(馬忽郡)으로 불리워졌다. 이것은 1995년 반월산성에 대한 발굴조사시 ‘마홀수해공구단(馬忽受解空口單)’이란 7자의 명문기와가 발견됨으로써 확인되었다.

이 마홀군의 치소가 있던 것이 바로 반월산성이었다. 고대의 성은 정치와 행정을 담당하는 중심지였다. 고구려는 반월산성을 마홀군의 치소로 삼아 포천일대는 물론, 현재의 양주 부근까지 통치력을 행사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지리지에 의하면, 양주도 한때 마홀이라 불렸던 것을 보아 고구려가 처음 한강 유역에 진출했을 때에는 양주도 마홀군에 포함이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반월산성은 평화시에는 행정적인 치소로 사용되다가 전쟁시에는 주변의 여러 작은 성을 통괄하는 기능과 인근지역의 백성들을 입보시켜 농성전을 수행했을 것이다. 신라에서 포천지역을 점령한 이후에도, 반월산성은 한강 유역을 방어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 인식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시 북한산성을 중심으로 한 2차 방어선을 준비함으로써 한강 유역을 고구려의 공세로부터 방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체계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당나라와 전쟁을 치를 때도 그대로 가동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나당전쟁에서 신라가 결정적인 승리를 쟁취한 매초성 전투도 이와 같은 신라의 전통적인 한강유역 방어체제에 당나라군이 무릎을 꿇은 것이라 하겠다. 반월산성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후금의 세력이 확대되자 도성을 방어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성을 다시 수축하기도 했는데, 북쪽의 적으로부터 서울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반월산성이 가장 중요시되는 전략적 요충지로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시대를 달리하면서도 반월산성에 대한 전략적 가치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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