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쯤 되어 보이는 누나들 몇 명이 흰 런닝 속에 브래지어를 착용한 채 수영을 하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습니다.
한 누나가 꽃무늬 팬티만 입고 수영을 하는데 물에 젖은 팬티가 몸에 꼭 달라붙어 아랫도리가 새까맣게 드러나 보이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밤에 몰래 개울에 나와 서너 명씩 짝을 지어 목욕을 하며 수다를 떠는 것이 고작이고 낮에는 보통 옷을 모두 입은 채로 물에 들어가는 것이 예사였는데 그 누나들은 당당하게도 팬티바람으로 목욕을 하여 내게 처음으로 아랫도리가 뻐근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나도 꽤 자랐나 봅니다.
아마도 학교에서 바로 개울로 와 수영을 하기 때문에 갈아입을 옷이 없어서 그랬나 봅니다.
가슴이 쿵쿵 뛰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습니다. 이제 나는 아이가 아닌 남자가 되어 가고 있는 중이랍니다.
우리들은 배를 채울 점심 꺼리가 없어 주라이산 뒷자락 밑에서 나오는 샘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바위나리를 캐 먹었습니다. 근처 뽕나무밭에서 오디를 입과 혓바닥이 새까맣게 따 먹으면서 서로 혀를 내 놓고 깔깔거렸습니다.
풀섶을 뒤져 피라미, 불거지, 쭉지, 붕어, 쉬리, 마자, 모래무지, 미꾸라지, 기름종개 등을 잡아 개울의 한 귀퉁이를 막아 담긴 물에 풀을 뜯어다 넣고 물고기가 죽지 않고 도망가지도 못하게 보관하였습니다. 고무신을 벗어 다슬기를 두어 됫박이나 주웠습니다.
“야, 그만 놀고 집에 가자.”
온종일 물속에서 보낸 우리들은 어둑어둑 땅거미가 지자 입술이 새파래지며 강바람에 부들부들 떨며 바위 위와 자갈밭에 벗어 놓았던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었습니다.
개울 한 귀퉁이에 모래를 막아 잡아 놓았던 피라미며 쉬리, 개리, 마자, 붕어들을 종뎅이에 주워 넣었습니다.
가지고 온 체며 반두, 비료포대를 챙겨들고 모래 묻은 고무신을 깨끗한 물에 헹구어 신고 올 때와 마찬가지로 한 줄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야, 배고파 죽겠는데 우리 복숭아 서리 해 먹을래?”
제환이가 소리쳤습니다.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다.”
내가 맞장구 쳤습니다.
의견의 일치를 보았지만 금방 복숭아 과수원 근처에 다다르자 의견이 분분해져서 다투기 시작했다.
“내가 망 볼께!”
“아니야, 내가 망볼 거야!”
잡히기가 싫으니 서로 자기가 망을 보겠다는 것이랍니다.
나는 정말 가슴이 뛰고 온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려서 서리를 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무나 고구마를 캐 먹어 본 적은 있지만 울타리를 쳐 놓고 개까지 기르는 과수원의 과일을 따먹어본 적은 없었습니다.
옥신각신 끝에 망보는 사람 없이 모두 철조망 울타리를 넘어 들어가 복숭아를 다섯 개 씩만 따기로 하였습니다.
제일이를 선두로 일채, 제환이, 응채, 그리고 나와 일채가 철조망을 넘어섰습니다.
탐스런 복숭아를 보니 잡힐 것에 대한 두려움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잊게 되었습니다.
윗옷을 바지춤에 쑤셔 넣고 가슴에 복숭아를 따 담았습니다.
나무 위에 올라서서 발그스레한 연분홍빛의 탐스런 복숭아 한 개를 뚝 따서 반바지의 허벅지에 쓱쓱 문질러 한입 베어 물었습니다.
순간 입에는 천만 가지 달콤함이 허기를 물리치며 솟구칩니다.
복숭아가 아니라 용궁 속에서 심청아버지 앞에 차려진 산해진미였습니다.
무지개를 떼어 먹으면 내입에 들어온 복숭아 맛과 비교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아이스께끼를 한두 번 먹어 보긴 했어도 그 맛은 감히 견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군부대 창설기념일에 들어가 기마전이며 차전놀이를 구경하다가 운 좋게 얻은 콜라 반병의 맛도 그 맛에 견줄 순 없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엄마 품에 안겨 빨던 엄마의 젖 맛일 겁니다. 이 맛 때문에 옛날 신선들이 무릉도원에서 바둑, 장기를 두며 사셨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야! 이거 되게 맛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소리쳤습니다.
“야, 새꺄! 조용히 해.”
제환이가 낮은 목소리로 눈을 흘기며 종용했습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