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1840년 21세에 어머니의 친정 오빠뻘인 독일의 작센공의 차남인 알바트 공과 결혼했다.
이 동갑내기 부부는 오늘날에도 영국인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정열적인 연애를 하여 맺어졌고 빅토리아 여왕은 영국 국왕 중 64년이라는 가장 긴 기간 동안 왕의 자리를 지켰다.
그런데 빅토리아 여왕은 고집이 매우 세었고 성격은 대범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결혼하자마자 이따금씩 충돌했다.
언젠가 두사람은 사소한 일로 부부 싸움을 하다가 화가 치민 남편 알바트공은 큰소리를 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잠가 버렸다.
얼마후 빅토리아 여왕은 남편 방의 문을 두드렸다.
“누구요?” “여왕입니다.”
안에서는 아무 대답이 없다. 여왕은 다시 한번 노크했다.
“누구요?” “여왕입니다.”
또 반응이 없다. 이렇게 몇 번이나 똑같은 문답이 오고 갔다.
몇 시간이 지난후 여왕은 남편의 방을 다시 노크했다.
“누구요?” “당신의 아내입니다.” 그때서야 비로서 방문이 열였다.
결국 알바트공은 자기아내인 빅토리아 여왕에게 마음속으로 한가지 요구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영국의 왕이기 이전에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달라는 요구였던 것이다.
그래서 ‘여왕’이 노크 할 때는 안 열어주던 문을 ‘아내’가 노크 할 때는 즉시 열어 주었던 것이다.
여왕은 그때서야 비로서 남편의 이러한 마음을 알았으며 그때부터 알바트공에 대해서는 아내로서의 역할을 정성을 다해 충실히 이행했던 것이다.
알바트공은 교양도 있었고 실력도 대단했다.
그의 의견이 아내인 빅토리아 여왕을 통해서 정책에 반영됐고 많은 업적을 남길수 있었다.
영국 최초의 만국 박람회도 알바트공의 정책 기획 작품이였다. 영국에는 막대한 이익을 가져왔고 영국의 국력을 세계에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영국의 번성기를 ‘해가지지 않는 나라’, ‘빅토리아 시대’라고 부르게 까지 된 것은 여왕과 알바트공이 한마음이되어 정치 외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서로 의견을 나누고 정책을 수립했기 때문이였으며, 그 비결은 여왕이 여왕이기 이전에 한 남자의 아내로서의 책임을 다했기 때문이다.
남여 평등은 중요하다. 그러나 한 남자의 아내, 자식의 어머니로서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참고 견딜줄 알아야 한다. 요사이 우리나라는 여권 신장이 지나쳐 아내와 어머니들이 이기적, 자기본위로만 살아가기 때문에 이혼률은 높아가고 따뜻한 가정은 해체되고, 차디찬 가옥만 많아지고 있다.
‘아내’는 ‘안해’ 즉 집안의 태양이라는 뜻인데,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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