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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3년11월15일 국가지정 유형문화재 보물 제1174호로 지정된 창수면 추동리 433번지 소재(경기도박물관 보관) 이재충 소유 1축 세로 39.5cm×가로 236.1cm 규격의 저지에 생견을 배접한 재질로 된 청흥군 이중노 정사공신교서. |
지난 1993년11월15일 국가지정 유형문화재 보물 제1174호로 지정된 창수면 추동리 433번지 소재(경기도박물관 보관) 이재충 소유 1축 세로 39.5cm×가로 236.1cm 규격의 저지에 생견을 배접한 재질로 된 청흥군 이중노 정사공신교서.
이 교서는 1993년11월15일 보물 제1174호(명칭: 청흥군 이중노 정사공신교서)로 지정되었는데 정사공신교서로서는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경우가 극히 드문 매우 귀중한 자료다. 창수면 추동리에 거주하는 이중노의 후손인 이재충씨가 소중히 보관하여 오다 현재는 경기도박물관에서 전시·보관하고 있다.
정사공신(靖社功臣)은 광해군을 폐출하고 인조를 옹립하는데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주었던 훈호(勳號)이다.
이 분충찬모입기 정사공신교서(奮忠贊謨立記 靖社功臣敎書)는 가의대부 강화부윤 증자헌대부 병조판서 겸 저의금부사오위도총부 도총관 청흥군 이중노에게 책훈된 것이다.
이중노(1577〈선조10〉~ 1624〈인조2〉)는 개국공신인 청해백(靑海伯) 이지란(李之蘭)의 후손으로 16세에 무과에 급제하고 이듬해 선전관을 역임하였으며, 1621년(광해군 13) 이천부사(伊川府使)가 되었다. 1623년(인조1) 김류(金 )·이귀(李貴) 등과 인조반정(仁祖反正)에 참여하여 정사공신 2등에 녹훈(錄勳)되었으며 청흥군에 봉군되었다.
1624년(인조2) 이괄(李适)의 난 때에 경기·강원 양도의 방어사(防禦使)가 되어 이성부(李聖符)와 함께 예성강 상류인 마탄(馬灘)에서 순절하였다. 부인은 정언백(鄭彦伯)의 딸이다.
이 교서는 1625년(인조 3) 4월에 인조반정에 참여한 훈신에게 발급된 것으로서 전체 크기는 가로 236.1cm, 세로 39.5cm이며, 교서의 크기는 가로 200cm, 세로 37.3cm이다.
두루마리(卷子本) 형식의 필사본(筆寫本) 1축(軸)으로 저지(楮紙) 바탕에 생견(生絹)으로 배접되어 있으며 녹권(錄券)의 전·후·상·하부 일부에 남색(藍色)으로 염색된 천을 입혔고 녹권 끝에는 목재축(木材軸)이 달려 있어 녹권을 말아 보관하기 편리하도록 되어 있다.
사주(四周)에는 주선(朱線)으로 둘러 있으며 상하로 2.5cm간격으로 80개의 주선안에 묵서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녹권 이면 한편에 한인급(韓仁及: 1583~1644, 인조반정 후 병조좌랑·개성부유수 역임) 제(製), 임광(任 : 1579~1644, 한성부윤 역임) 서(書)란 두줄의 글이 쓰여 있어 이 교서의 제작자와 필서자의 이름을 밝히고 있다. 말미의 인기(印記)는 시명지보(施命之寶)이다.
녹권의 내용은 크게 3단락으로 나누어지는데 첫째 단락은 이 교서를 내리게 된 경유를 밝힌 후, 이중노의 충성심을 서술하고 마지막으로 신하로서 국가와 국왕에 대한 서약을 다짐하고 있다.
둘째 단락에는 공신에 대한 포상 내용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셋째 단락에는 정사공신 1등에서 3등까지의 명단을 열거하고 있는데 1등은 김류(金 ) 등 9명, 2등은 이중노 등 14명, 3등은 박유명(朴惟明)등 27명으로 총 50명의 공신을 표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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