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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창종의 <포천 이야기> (132)

왕방산인(王訪山人) 홍춘수(洪春壽)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5년 05월 31일

포천 사람은 많다.

역사적 인물로 청사(靑史)에 길이 빛나는 분이 있는가하면 그렇지 못한 분들도 있다.

포천출생, 포천 생거(生居), 포천에서 벼슬한 사람, 포천에 묘가 있는 사람 등으로 구분되는데 포천에서 출생하여 평생을 살았으며 또 포천에서 벼슬을 하고 묘가 있는 분들은 매우 드물다.

여기 포천에서 태어나 일생동안 벼슬을 멀리하고 은사(隱士)로 일관한 분을 소개하여 알리고자 한다.

조선시대 학자였으며 향리(鄕里)의 교육자였던 홍춘수님은 선단리에서 은거하였다.

왕방산 기슭인 선단리에서 산 홍춘수님은 호 까지도 ‘왕방산인(王訪山人)’이라고 지었다. 학문이 넓고 깊었으나 님은 이인(異人) 소리를 들을만치 벼슬을 철저히 사양하고 살았다.

제자를 가르침에 있어 인재를 골라 교육함으로써 문하에 유명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당시 시문(詩文), 의학(醫學), 글씨(書藝)에 이름높던 정착과 교유(交遊)하면서 학문을 토론했고 일생을 후학들을 교육하는 데만 전념하였다.

당대의 성리학자이며 청백리로 명성이 높던 조경(趙絅) 선생이 포천읍지를 편찬하고자 할 때, 관계인사들이 모두 “홍춘수님 만은 당연히 인물록(人物錄)에 기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홍춘수님이 얼마나 포천지역 학문발전과 교육진흥에 크게 이바지하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토록 평생을 왕방산 기슭에서 학문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쓰던 유지(遺址)가 선단리에 남아 있어 님을 기억하게 한다.

요즈음 학문을 하고 대학에서 보직교수의 직함을 가지고 마치 높은 벼슬자리에 있는 듯 착각을 하여 교만을 떨고 재야에서 묵묵히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헌신한 숨은 은사들을 내려다보는 경우를 흔히 볼 때, 옛날 홍춘수님 같은 훌륭한 은사(隱士)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근래에도 수십 년간 한학을 연구하고 서당을 개설하고 포천의 유림들을 모아 시회를 즐겼던 어룡리의 송운서당 오영우(松雲書堂 吳永祐)님이나 미강서당 이진호(嵋崗書堂 李眞鎬)님도 홍춘수님 같은 분들이 아니었나 생각되어 진다.

또 유림들을 중심으로 한시사(漢詩社)를 만들어 한시를 공부하고 옛 선비들의 선비정신과 아름다운 한시의 향기를 맛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존경과 또 존경의 마음이 앞선다.

매년 한시백일장을 열어 전국의 한학자들을 명현의 고장 내고향 포천으로 모이게 하는 바는 명현의 고장답고 홍춘수님 같은 분이 사시던 고장다운 면모라 생각되어 고개가 절로 숙여짐을 금할 길 없다.

역사의 기록이나 정확한 인물지에 홍춘수님의 생·몰년이 기록되지 않았음은 유감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필자연락처 02-932-2434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5년 05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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