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채의 동생 다섯 살짜리와 여섯 살짜리가 따라붙었지만 일채는 돌팔매를 던져가며 따라오지 못하도록 결사 저지하였습니다. “니덜, 따라오면 죽을 줄 알아!” 우리 쪽에서는 실로 가공할 무시무시한 엄포였지만 동생들은 들은 체도 않고 막무가내로 따라붙었습니다. 우리들은 최후의 작전을 구사하기로 하였습니다. 삼십육계 줄행랑이었지요. 그들은 아직 어려 우리들의 줄행랑 작전에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들이 저만치 달아나자 그들은 징징 울며 점점 작아져 보였습니다. 막걸리 지점집을 벗어나자 검정 고무신을 손에 벗어 들었습니다. 지난 장날 엄마가 사다 주신 신발이거든요. 모랫길, 자갈밭을 걸어가면 얼마나 빨리 닳는다구요? 그래서 벗어 들고 가는 거예요. 해창네 집에 들르니 해창이는 어디로 갔는지 없었고 엄마가 계셨습니다. “아주머니, 반두(고기 잡는 그물, 일명 족대라고도 함) 좀 빌려주세요.” 평소 해창이와 가장 단짝인 내가 말했지요. “반두 없다!” 아주머니는 빌려 주기 싫은 눈치로 퉁명스럽게 말씀하십니다. “아, 좀 빌려줘요. 망가뜨리지 않을게요. 저 혼자서만 잡을 거예요. 망가뜨리지 않고 제가 책임지고 가져올게요! 빌려주세요. 네?” 나는 애원하듯 말하였습니다. 아주머니께서는 아무 대꾸가 없으십니다. 나는 반두를 찾으려고 뒤란과 외양간 위의 시렁, 토끼장 위, 그리고 부엌 구석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반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과 궤짝으로 만든 토끼장들이 아파트처럼 쌓여 있었는데 한 토끼장은 거적으로 가려져 있었습니다. 토끼는 새끼 날 때 다른 사람이 보면 새끼를 잡아먹는 습성이 있답니다. 단추 구멍만한 실눈을 크게 뜨고 두리번거리며 구석구석을 찾아보았습니다. “아주머니! 저 쌀광에 들어 있지요? 어차피 빌려 주시려면 빨리 주세요.” 어리광을 부리듯 계속해서 찾고 조르는 내 등살에 못이기는 듯 측은하셨는지 아주머니는 마침내 쌀광의 자물통을 쇳대로 열고 반두를 꺼내 주셨습니다. “옛다. 니가 책임진다고 하니까 빌려 주긴 빌려 주는데 망가뜨리지 말고 잘 써야 한다. 아저씨가 아시면 야단맞을 거야!” “알았어요.” 반두를 받아 들고나는 의기 양양하여 큰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해창이 어디 갔어요?” “토끼풀 뜯으러 갔다.” “그랬겠지요, 뭐? 그 앤 토끼 아범이니까요.” 제환이가 거들었습니다. “망할 녀석!” 아주머니가 눈을 흘기시며 꾸중하듯 말씀하셨습니다. “야, 해창네 토끼 또, 새끼를 여섯 마리나 낳았데? 모두 서른 마리는 넘을 거야.” 일채가 끼어들며 말하였습니다. 마지막 준비물인 반두까지 빌린 우리들은 보무도 당당하게 삼팔선 경계를 흘러 내려가는 개울을 따라 수송부대 위쪽에 위치한 방죽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수송부대 위의 산에는 흰 호박돌을 주어다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라고 큼직하게 쓰여 있었어요. “해창이 저기 있다.” 제환이가 해창이를 먼저 보며 말하였습니다. 해창이는 그곳에서 토끼가 잘 먹는 클로버, 칡잎, 씀바귀 등을 뜯고 있었습니다. 해창이는 초등학교에 다니면서도 틈틈이 토끼를 길러 공책, 연필을 사 쓰며 용돈을 벌어 씁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