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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창종의 <포천 이야기> (130)

「배뱅이 굿」과 「조윤숙」 선생님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5년 05월 12일

‘포천 최초의 영어 선생님’ 하면 독자들은 놀랄 것이다. 또, ‘배뱅이굿’ 판소리 완창자라고 하면 다시 한번 놀랄 것이다. 1945년 내 조국 대한민국이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압제(식민지) 통치 밑에서 해방되고 38도선 이북인 영중면의 일부, 영북면, 이동면은 북괴 통치 아래로 빼앗겼으나 내 고향 포천은 조국 광복의 기쁨 속에서 나날을 보냈다. 그 기쁨 속에는 내 고향 포천땅에도 중학교가 설립되었다는 점이 한 줄기를 이루고 있었다.

“중학교 가는게 옛날 과거 초시 보는 거나 갈지?”

하면서 좋아들 하였다.

“영어를 배우지? 어디 영어 한 마디 해 보렴”

새로 입학한 중학생 아들을 세워 놓고 온 가족들은 기뻐서 박수를 쳤다.

‘농회’(지금의 농협의 전신) 고치 창고와 사무실을 개조하고 운동장은 군청 앞 뒤 마당을 빌려쓰는 바람에 군청청사는 중학교 학생들로 온통 포위된 채 사무를 보고 공무를 수행해야 했다.

이부성 교장선생님이 부임하시고 김주한 교감님이 시무를 하셨는데 김주한 교감님은 경기도 평의원(지금의 도의원)을 역임하신 안동 김씨 가문의 어른이셨다.

이때에 최초로 영어를 담임하셨던 분이 조윤숙 선생님이셨다. 일제 치하에서 보성전문학교(현 고대의 전신)사학과를 졸업하시고 모범 농민으로 계시다가 해방된 조국에서 중학교 영어를 가르치셨으며 포천초등학교 교사로 계시던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 전신)를 졸업하신 최학규 선생께서 국어를 가르치셨다. 두 분의 인기가 매우 좋았다.

그런데 조윤숙 영어 선생님은 영어도 재미있고 엄하게 가르치셨으나 일반 군민들은 ‘판소리 배뱅이굿’ 완창자로 기억되는 더 유명한 분이었다. 포천초등학교 양운하 교장님과도 절친하셨는데 주연에서 ‘판소리 배뱅이굿’을 한마당 멋들어지게 읊으시는 모습이 일품이라고들 하셨다. 특히 조윤숙 선생께서는 오랫동안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시면서도 한국의 역사 중 고대사 연구를 깊이 하셨으며 학계는 물론 세계의 역사 학자들의 동의를 얻고 공감을 불러일으키고자 당시로서는 인쇄술이었던 ‘등사판 인쇄’로 ‘역사학(고대 한국사)’논문을 작성 다른 나라(중국·일본·대만)의 학자들에게 송부하였다고 한다.

포천중학교에서 정년 퇴직하시고 안성농민학원 전임교수로 계시다가 타계하시었다.

아직도 70년대 이상의 포천인들은 조윤숙 선생님의 ‘배뱅이굿 판소리’를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이해조 문학’이 내 고향 포천의 현대 문학의 여명기 횃불이었다면 ‘조윤숙 선생의 배뱅이 굿’완창은 국악의 꽃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조윤숙 선생님의 후손은 안성시에 살고 있음: ‘안성동물병원’)

필자연락처 02-932-2434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5년 05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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