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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빙공착영(憑空捉影)의 소설 ‘화의 혈(花의 血)’대하여

이희용 한국연극협회 포천시지부장 포천시 문화예술봉사단장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5년 05월 12일

화의 혈을 소설의 형태로 분류하면 풍속 소설적 갈래를 유지하고 있으며 시점은  3인칭 전지적 작가시점이다.  본 작품은 등장인물 중에서 선초와 모란으로 이어지는 서사의 전개과정에서 당시의 부패한 정부 관료에 대한 비판과 일상적인 삶의 풍습을 적절하게 배치시켜 당시의 정부 관료에 대한 비판과 일상적인 모습을 사실적으로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있다. 또한 종결어미는 문어체인 산문체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언문일치에 상당히 가까이 갔다는 면에서도 문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작품에서 작가가 서언에서 밝힌 내용에도 있듯이 거짓으로 꾸민 것은 전혀 없고 오로지 실제 있었던 일을 취하여 후대 사람들에게 경계가 될 만한 작품을 말하고 있듯이, 당시 조선 어느 곳에서나 만날 수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여겨진다.

작품이 쓰여 질 당시에 문란해진 국가행정체계, 위기에 처한 기층민중들의 생활상, 여성의 정조를 마음대로 유린하는 사회적 관습들을 그대로 재현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작품 후반부에서 모란이 언니의 혼령에 빙의(憑依)한 것처럼 꾸며서 이시찰의 악행을 고발하는 것을 일반사람들이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도 관심있는 일이다. 억울하게 죽은 혼령이 다른 사람의 입을 빌어 나타나는 것은 조선조 고대소설 이후로 이 당시의 사람들에게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소설의 서술자가 전면에 등장하여 등장인물에 대해 논평을 가하는 방식이나, 자품전체 주제와 관련된 핵심 사건에 대한 논평을 가하는 것 등 근대소설의 법적 특성으로 미루어 볼 때 비교적 오나벽하지 못한 부분이 발견되고 있으며 과도한 서술자의 개입이 약간의 문제점으로 제기 대기도 한다.

이 작품 ‘화의 혈’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동학농민운동에 대한 작가의 관점이다. 1911년에 들어서 ‘월하가인’ ‘모란병’ ‘화의 혈’ 등을 통해서 그 역사적 의미를 집중분석하고 있는데 농민군 봉기의 직접적인 원인을 봉건체제의 모순에서 비롯한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등장인물 중에서 동학농민운동 당시 실제 인물과 결합시켜 봉건체제의 모순을 실질적으로 비판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소설은 이도사의 남부 시찰 때, 동학군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보인 탐학행위 부분 이도사로 인해 죽은 선초와 동생 모란의 복수담이 결합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중 특히, 전반부에서 동학의 발생 배경과 정부군의 토벌 과정이 비교적 사실적으로 다루어져 문학적 의의가 크다. 이 소설에서 경찰의 구실은 이도사가 시찰이 되어 남부지방의 동학군을 토벌하는 과정을 통해 보여 진다. 주인공 이도사는 전라도 지방에 선초라는 기생이 유명하다는 것을 듣고 그녀를 만나러 가고자 한다. 그런데 벼슬이나 재산도 없이 가면 만나지 못할 것을 알고, 정부 고관인 신대신, 신장신 등에 아첨하여 시찰이라는 지위를 얻게 된다. 시찰이란 암행어사와 같은 임무를 띤 관리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도사가 신대신과의 대화 도중 동학의 발생 원인을 비교적 올바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도사의 말은 곧 이해조의 말로, 그가 <고목화>,<홍도화>,<월하가인>,<원앙도>,<강상기우>에서는 동학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나 그 발생 원인만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이도사는 동학의 발생원인을 지방관의 부패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우근 교수는 동학란의 발생원인은 수령, 吏胥의 貧汚와 횡포, 濫徵, 過徵에 의한 과중한 농민 부담, 공사간의 고리대적 수탈, 이런 것들에 대한 반발이었다고 피력하고 있음을 볼 때, 이도사의 판단이 옳았음을 알 수 있다.


신대신, 신장신 등에 아첨하여 시찰의 임무를 띠고 남부지방에 내려간 이도사는 그가 예문에서 신대신에게 주장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행동한다. 동학당을 처치한다는 이유로 무죄한 양민을 마구 죽이거나 괴롭히고 어릴 때 은인이었던 임씨와 그의 어머니까지도 무참히 죽인다. 그리고 재물을 마구 긁어모은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번 사찰을 빌어 나려가기는 소관이 하사리오마는 아모일도 한 것 없이 기생작첩부터 했다면 청문이 사나와 명예에 관계가 되겠고 또는 세상일이 내 실속부터 하는 것이 가한 즉 돈부터 넉넉히 벌어노코 보겠다.

이도사가 신대신에게 했던 말은 ‘권세를 잡기 위한 하나의 구실에 불과할 뿐’이다. 왕의 대리 임무를 띤 자로서 지방 수령들을 올바로 감독하여 동학란을 진정시켜야 할 그는 오히려 지방 시찰에 오르자 자신이 매도했던 바로 그 탐관오리로 변신하여 백성들의 원망을 사 난을 더 번지게 하였다. 지방 수령이 잘 다스리는데 리사찰 때문에 더 동학당이 날뛰었다. 이것을 통해, 이도사의 횡포가 어떠했는지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대부분의 고소설에 등장하는 암행어사는 왕의 특명을 받은 절대적 힘을 가진 자로서 어려움에 처한 주인공을 구한다. 그래서 재물만을 탐내는 부패한 관리들에 시달려 온 독자들은 암행어사를 ‘민중의 꿈’으로 여겼다. 그러나 <화의혈>에서는 그런 ‘민중의 꿈’으로서의 암행어사와는 대조적으로, 백성을 괴롭히고 피를 빨아 먹는 존재로 등장하고 있다. 이것은 이해조가 당시 실태를 보다 명확히 파악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관리된 자들의 부패함을 비판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황현의 ‘매천야록’에 보면 지방 관리가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었다는 기록이 있는가 하면, 어사 ‘어면상’이 전라도에서 가렴주구하여 욕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면상을 천진 주개 독리로 임명하여 천진에 부임했다.…그가 전라 어사로 갔을 때 기생을 데리고 산사를 찾아 돌아다니며 행락을 했다. …그런데 이면상이 각 고을에서 사증한 것은 내지를 받들어 각절로 보내 축성(祝聖)의 제사 비용에 충당하였다. 또 호사하는 관리나 큰 부자를 조사하여 없는 죄를 무고하고 죄인으로 잡아 들였다가 놓아 주었다하여 드디어 일도(一道)의 돈을 모두 왕에게 진상하고 모읍(某邑)에서 돈 몇 천냥을 모사(某寺)의 불공하는데 보냈고 …‘어사는 이면상으로 망했다’

최원식도 이용태의 행위를 예를 들어 밝혔다.

박원명은 고부 민란을 잘 수습하여 거의 안정을 되찾는 중에 안핵사 이용태가 이르러 폭행, 약탈을 자행, 마침내 그 해 5월 백산(白山)봉기를 하였던 것이다.

소설의 전반부에서 이도사가 많은 양민을 죽이고 재물을 거두어 들였지만, 그의 궁극적 목적은 여주인공 선초를 차지하는데 있었다. 선초의 반항으로 자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되자, 그녀의 아버지 최호방을 동학당으로 몰아 죽이려 했다. 이에 선초는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기 몸을 이도사에게 허락하고 영원히 같이 살 것을 약속하며 증서를 받아 두었다. 그러나 이도사는 그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달아났다. 결국 이도사는 막중 국세를 환롱한 죄로 평리원에 압송되어 온 후 3년 동안 재판을 받으면서 괴로운 감옥 생활을 하고 풀려났다.

이 소설에서 선초나 모란을 끌어들인 것은 독자에게 흥미를 제공하려는 소설 본래의 기능을 중시한 작가의 의도적 장치이다. 이도사의 탐학을 통한 ‘교훈’과 선초의 복수담을 통한 ‘흥미’, 이 두 가지 가치를 작가는 독자에게 동시에 충족시키려 企圖했다. 

 앞에서 ‘화의 혈’을 공부해 본 결과 동농 이해조의 작품이 이 전보다 더욱 객관적이고 그 속에 확실한 의미도 내포하고 있으며, 작품의 구성이 다분히 소설적으로 진화 되었고 등장인물의 성격도 상세하게 설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당시의 미분화 된 소설의 체계 속에서 우연성이 적어지고 필연성이 증가함으로 많은 발전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있을 수 있었다.

 이제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동농 이해조의 신소설에 대해서 근거 없는 자료의 남발과 그로 인한 작품의 폄하와 왜곡을 확실한 근거의 제시로 검증해 내는 것이 우리가 죽기 전가지 해내고 지켜가야 할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화의 혈’은 ‘춘향전’을 근간으로 하였으나 그 구성이나 묘사가 사실적 표현이 바탕을 이루고 있으며 정통 회장체 소설의 새로운 개척을 이루었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동학농민운동을 통하여 봉건체제의 부당성을 경고하는 매시지를 전하였다는데 그 당시로서는 상당히 진보적임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많은 관심과 애정으로 동농 이해조 선생의 근거를 확보하여 자손만대에 그의 사상과 선구자적인 의식을 알아내어 후손에게 문화적 유상으로 물려주어야 진정한 포천사람의 자세일 것이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5년 05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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