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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창종의 <포천 이야기> (129) 포천의 정문(抱川之旌門)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5년 05월 03일


‘정문(旌門)’이란 충신 효자 열녀들을 표창하기 위하여 그의 집 앞에 세운 붉은 문을 말한다.
현존하는 정문으로는 향토 유적 제3호로 지정되어 있는 어룡리 273-3번지 소재 오백주(吳伯周) 효자의 정문인데 1723년(경종3년) 건립되었던 것이 있다.

조선조 숙종 때 효자 오백주(1643∼1711년)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또 증손인 오수진(吳壽晋) 부부의 효자, 열녀 정문과 오몽량(吳夢樑)의 아내 문화유씨의 열녀 정문도 함께 모셔져 있다. 문화유씨는 오백주의 증조모가 되신다. 고로 오백주, 오수진의 부부, 문화유씨 등 네분의 정문이 함께 모셔진 곳이기도 하다. 한 가문에서 네분의 효자 열녀가 탄생하였음은 보기 드문 일로서 내 고향 포천의 자랑이 아닐 수 없으며 특히, 효자 오백주는 효자는 물론, 청렴결백하고 백성을 지극히 사랑하였던 충신이었으며 님의 애마도 효자이자 충신인 그가 죽자 함께 순사하였다는 전설을 남겨 어룡리를 지나는 길손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용연서원에 배향되는 서원말 조경선생의 가르침으로 축석령에다 축석단을 쌓고 호랑이 등을 타고 꿀을 구하고 산삼을 구한 얘기는 한국의 대표적 호효(虎孝) 설화로 유명하다.>

향토유적 제9호로 지정된 신급효자 정문은 1703년(숙종29년) 내촌면 음현리 667에 건립되었는데 님의 효행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신급은 6학자로 임란시 탄금대에 배수진을 치고 전사한 신립 장군의 형님이다.(1543년∼1592년) 어머니가 임진왜란시 왜적을 피해 이천 언덕에서 추락 사망하자 목놓아 통곡하며 절벽에서 투신하여 자결하고 어머니의 뒤를 따른 효자이다. 품성이 강직하고 사학(史學)에 밝았으며 강한 의지와 충성이 지극하여 감역, 순변사 등을 지냈으나 변방으로 호종간 두 형님과 두 아우의 왕사로 인한 죽음을 슬퍼하고 어머니의 뒤를 따른 효심은 유명하다. 죽은 10년 뒤 정6품 감역에서 3품인 사헌부 장령으로 추서되었으며 5대손인 신윤하(申胤夏)도 효성이 지극하여 고종2년(1865년)에 효자정문이 내려져 나란히 모셔졌다.

향토유적 제40호로 지정되어 있는 권종정문(權悰忠臣旌門)은 조선중기에 세워졌는데 소흘읍 고모리에 있다.

문신 권종(權悰, 1554년∼1592년)의 충절은 기리기 위해 세워졌는데 권근의 후손이며 권율장군의 사촌형님이다.

임진왜란시 용전분투 끝에 아들 준(晙)과 함께 전사하였다. 개령현감 등 여러고을 수령을 지냈으며 나라에서는 충민공(忠愍公)의 시호를 내렸다. 충남 금산군 제원면 저곡리에는 님의 순의비(殉義碑)가 세워졌다. 우리는 나라가 위급할 때 권씨 문중이 모두 함께 충성을 다한 충절에 머리숙여 경의를 표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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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5년 05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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