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 동 규 전 영북종고 교장 현 영북노인대학 학장
노인대학 교육과정(敎育課程)의 일환(一環)으로 고적탐방(古跡探訪) 계획에 의하여 지난 해 5월 27일 청와대·서대문 독립공원·창덕궁 등을 탐방했다. 학장을 포함해서 68명 학로(學老)들을 교학부장이 선두(先頭)의 안내자로 2대의 버스에 분승(分乘)해서 7시에 출발, 9시 30분에 경복궁 주차장에 도착하여 청와대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춘추관 안내실로 안내되었다. 필자는 교장 재임 때 청와대를 직접 초청 방문한 적이 3회나 되는데 1차는 71년 11월 29일 자유교양(自由敎養) 교원논문 입상자로 학생들 입상자와 함께 청와대로 박정희 대통령의 영부인 육영수 여사를 예방하였는데 그 당시 육 여사가 주선한 다과회에 참석해 고전(古典) 읽기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제2차는 93년 5월 15일 스승의 날 12시 학교경영 우수기관으로 선정되어 교육부장관 수상자로서 초청되어 김영삼 대통령 내외를 예방(禮訪)하여 영빈관 2층 연회장에서 교육입국(敎育立國)에 대한 간담회에 이어 설렁탕 식사 대접을 받고 청와대 경내(境內)를 두루 안내되어 기념촬영을 했었고, 제3차는 97년 12월 23일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자로 초청되어 청와대 김영삼 내외를 예방하여 설렁탕 대접을 받고 본관 앞에서 촬영하고 경내를 2차 방문할 때와 같은 코스로 경내를 안내 받았던 일이 이번 방문을 통해서 당시를 회상하게 되어 감회(感懷)가 더 없이 새롭기만 하다. 이번 방문을 위해 방문자 명단을 작성하여 인터넷으로 신청하여 당일 1차로 방문의 영광을 맞게 되었는데 학로들은 무척 기뻐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청와대의 프레스 센터인 춘추관(春秋館)에서 안내 설명을 듣고 안내자에 의해서 소규모 연회장인 상춘재(賞春齋)가 멀리 바라보이는 넓은 잔디밭인 녹지원(綠地園)에 안내되었다. 녹지원 가운데는 수령이 150년이 넘었다는 한국산 반송나무가 눈길을 끌었다. 이조(李朝) 때는 과거시험과 군사훈련의 장소로 지금은 야외 행사장으로 쓰인다고 했는데 파릇파릇한 잔디가 펼쳐 주변의 수목과 어울려져 5월의 신록(新綠)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는데 잠시 머물렀다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음 코스로 향했다. 다음은 철거한 구 경무대 본관 앞 옛 수궁(守宮)터에서는 안내자가 경무대에 얽힌 일화(逸話)를 소개했는데 일제 때의 총독부에서 건국 후 경무대로 주인이 바뀌었는데 경무대를 청와대로 개칭(改稱)하다가 청와대 본관을 신축하면서 종래는 역사의 뒤안길에서 철거되었다는 설명에 웅자(雄姿)한 석조 건물도 역사를 주름잡던 인걸(人傑)도 간 데 없어 인생의 덧없음을 다시 한번 실감하였다. 다음은 대통령이 집무를 하면서 국무회의와 외빈접대 등 국정운영의 중심지인 본관을 앞을 지날 무렵에 안내직원 한 사람이 급히 방문자를 한 곳에 모아서 ‘청와대를 숱한 사람이 방문을 해도 대통령을 만나 본 사람은 별로 없었는데 오늘만은 대통령을 만나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면서 여러 어르신이 오늘 별을 따는 주인공이 되었다’면서 우리 일행을 대통령이 정문을 향하는 도로변으로 안내되는 순간에 노무현 대통령의 승용차는 우리 일행 앞을 서행하면서 승용차 문을 열어 손들어 반겨주어 우리 학로 일동도 손들어 박수 치며 화답(和答)했다. 학로들은 반가움과 기쁨이 만면에 가득 찼었다. 때마침 그 날은 연세대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로 리더십에 대한 특강(特講)차 청와대를 출발하는 시간에 우리 방문 일행과 만남이 이루어졌다. 노 대통령에게는 역대 대통령이 소홀히 한 노인복지 정책에 더 많은 관심과 배려로 예산확충을 기대해본다. 학로들은 TV에서나 노대통령을 만나 보았지 실제의 인물 노 대통령을 만났다는 사실에 자랑이 계속 이어졌고, 직접 만나본 사람이 누구인가 반문(反問)하면서 즐겁고 보람 있는 방문이라면서 안내를 주선한 학장에게 찬사(讚辭)를 아끼지 않았다. 경내는 수많은 나무가 즐비(櫛比)하여 나무들의 녹음(綠陰)이 짙어가고, 경내는 진달래를 비롯한 이름 모를 꽃들의 향기 냄새가 전 코스를 마칠 때까지 이어졌다. 청와대는 예로부터 길지(吉地) 중에 길지로 알려져 왔는데 뒤로 주산(主山)인 북악산(北岳山)이 우뚝하고 낙산(駱山)과 인왕산(仁王山)이 좌청룡(左靑龍)·우백호(右白虎)로 호위하듯 자리하고 있는데 고려 때의 이궁(離宮) 터로 이조 때는 경복궁의 후원(後園))이었으나 1927년 일본총독관저로 건축되었다가 1948년 정부수립 후 대통령 관저(官邸)로 경무대로 불리다가 1960년 4월 혁명 후 윤보선 대통령이 청와대(靑瓦臺)로 개칭(改稱)하였으며, 1978년 12월 영빈관을 신축하였고, 1990년 10월 대통령 관저를 신축하였으며, 1991년 9월 청와대 본관을 신축하여 오늘의 웅장(雄壯)한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안내 받았다. 이어서 탐방은 청와대 서남쪽 소재한 칠궁(七宮)을 찾았는데 칠궁은 이조시대 왕을 낳은 후궁(後宮)들의 위패(位牌)를 모신 곳으로 정문에 들어서면서 남북축에 맞춘 2채의 재실(齋室)이 있고 그 뒤로 남향 7궁이 있고 중간지점에 냉천(冷泉)과 냉천정(冷泉井)이 있으며 주변의 뜰은 전통적인 한국 정원(庭園)의 일면을 보여주며 주위 담장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안내자는 칠궁마다 자료 없이 설명을 그침 없이 술술 외워나갔지만 후궁들의 역사적인 사실을 기억하기란 쉽지 않아 그저 안내자를 따라 다니기에 바빴다. 중식 후 2차 탐방지인 독립공원을 찾았다. 구 서대문 형무소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갖은 옥고(獄苦)를 치르고 마침내 목숨까지 빼앗겼던 곳으로 우리민족 독립의 현장이며 살아있는 역사의 터이다. 이곳의 옥사(獄舍)·사형장(死刑場)·망루(望樓) 등을 원형대로 복원(復元)하고 악명(惡名) 높았던 구 보안과 건물을 보수하여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개관(開館)된 곳에 안내되어 영상(映像)으로 설명을 들었는데 일제의 인권탄압과 가혹한 고문(拷問)·처형(處刑) 장면은 목불인견(目不忍見)으로 참혹(慘酷)하고 처참(悽慘)하여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었다. 옥사마다 일제의 탄압(彈壓)과 만행(蠻行) 잔혹상(殘酷相)을 볼 수 있어 관람객 가운데 분노(忿怒)를 참지 못하기도 하고 일제하(日帝下)에 출생하여 일제 만행(蠻行)을 경험했던 학로들은 그 당시 체험담(體驗談)을 계속 이어 나갔다. 각급 학교 학생들이 학급단위로 단임 교사의 인솔로 옥사마다 들려 설명을 듣는 학생들의 모습이 너무 진지(眞摯)하여 교사의 설명을 놓지 않고 기록하고 있었다. 국민은 몰론 재외동포 특히 청소년들이 모국(母國)을 방문할 기회에 이곳 독립공원을 찾아 조국에 대한 올바른 역사관(歷史觀)과 선열(先烈)의 독립정신을 본받기 위해서 이곳 탐방을 권유(勸誘)하고 싶었다. 제 3차 탐방은 창덕궁이다. 창덕궁은 1405년 정궁(正宮)인 경복궁의 이궁(離宮)으로 지었고, 1412년 돈화문이 건립, 1592년 임란으로 소실(燒失), 1610년 복구, 광해군 이후 고종까지 13대 270년 동안 정사(政事)가 이루어졌던 곳이다. 1997년 12월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국제적으로 보호를 받게 되었다고 안내되었다. 안내원을 따라 돈화문(敦化門)을 통과해서 왕의 즉위(卽位) 때 신하들과 외국사신들의 하례(賀禮)시에 접견하던 인정전(仁政殿), 임금과 신하들 사이에 국사를 논의하는 선정전(善政殿), 임금의 처소이며 어전 회의실로 사용하던 희정당(喜政堂), 왕과 왕비의 침전(寢殿)이며 왕족(王族)이 생활하는 대조전(大造殿), 헌종의 후궁 김씨의 처소인 낙선재(樂善齋)로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면서 후원(後苑)인 비원(秘苑)까지 찾았다. 이 후원은 우리나라 궁궐의 전통적인 조원(造園)으로 지형과 조화롭게 어울리게 누각(樓閣)을 짓고 꽃과 나무를 심고 못을 파서 아름답고 조화 있게 꾸며져 있었는데 안내자의 설명은 설명대로 수박 겉핥기로 대충 훑어보면서 탐방을 대충 끝마쳤다. 학로 가운데는 건강이 여의치 않아 중도에서 머물다가 돌아오면서 합류(合流)했고 기념촬영을 마치고 탐방일정을 서둘러 끝내고 귀로(歸路)에 올랐다. 아침 일기 예보(豫報)로는 오후에 비가 온다고 했는데 탐방 중에는 비는 오지 않지만 날씨가 무덥고 구름이 덥히기 시작하더니 오후 4시가 지나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해 귀로(歸老)인 휴게소에서 한식식사를 맛있게 즐겁게 했으니 이번 의미 있는 고적탐방은 완벽한 준비와 당초의 계획대로 잘 추진되었다. 우리는 청와대 방문을 오래도록 기억해서 회고담(懷古談)으로 자주 나누게 되는 것은 물론 손자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서대문형무소의 일제만행(日帝蠻行)의 현장을 본 것과 왜정 말기 몸소 겪었던 탄압의 체험을 곁 드려서 손자들에게 들려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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