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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생/각] 고사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5년 04월 01일


조 귀 순
(포천시 가산면 출생, 수필가)


우수 경칩이 지났다. 얼었던 땅이 해토되어 길은 질척대고 신발은 흙 범벅이 되었다. 어른들은 논의 검불을 그러모아 태우고 텃밭의 무구덩이를 헐어낸다. 겨우내 털이 부숭부숭 난 무가 아직도 한 방구리나 된다. 지난해는 무가 굵게 잘 들었다. 또 한해 농사의 시작이다. 풍년이 들길 바라는 마음으로 볍씨를 준비하고 고추모를 붓는다. 나는 풍년이라는 말을 들을 때면 문득 고사를 지내던 날의 풍경이 떠오른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가을 추수가 끝나면 고사를 지냈다. 커다란 자배기에 두어 말 되게끔 찹쌀을 담궈 불린다. 방앗간이 멀리 있어 손수 절구에 찧었다. 어머니가 절굿공이를 높이 들어 올리면 그 사이 큰어머니는 가장자리의 쌀가루를 안으로 우겨 넣으셨다. 어머니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자 큰어머니가 절굿공이를 잡았다. 큰어머니는 절굿공이를 내리칠 때마다 “셧, 셧” 소리를 냈다.

무거리까지 다 빻으면 시루에 찹쌀가루와 붉은 통팥을 한 켜씩 앉혔다. 그 위에 누런 삼베 보자기를 덮고 다시 새끼줄로 엮어 만든 시룻방석을 올린다. 솥과 시루 사이의 틈새는 밀가루로 반죽한 시룻번으로 빙 돌려가며 발랐다. 김이 밖으로 새어 나오면 떡이 잘 쪄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큰어머니는 볏짚으로 만든 맷방석에 앉아 불을 때셨다. 의연하게 여유로운 모습으로 보였으나 마음만은 그게 아니었을 게다. 떡이 설지 않고 잘 쪄지길 내내 빌고 계셨을 것이다. 그런가하면 곁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내가 행여 방정맞은 입방아라도 찔까 봐 그것도 걱정이었을 게다. 떡 시루 앞에서는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고 어머니가 이미 귀띔을 해 주셨다.

조심 할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미 고사 날을 받아 놓으면 음식도 가려먹어야 했다. 비린 생선도 안 되고 육식도 못 먹었다. 초상집 상주를 봐도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아무나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대문에는 출산한 집처럼 청솔 가지를 꽂았다. 그렇게 조심을 하고도 떡이 다 쪄지기 전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고사떡이 빨리 먹고 싶어 어머니의 행주치마를 잡아당기며 성화를 댔다. 그러나 뜸이 충분히 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평상시 그렇게 자상하고 귀여워해 주시던 큰어머니도 그때까지 따스한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그러니 응석이 통할 리가 있겠는가. 부엌 문지방을 수도 없이 넘나들며 큰어머니의 비녀 낀 쪽 머리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드디어 애타게 기다리던 떡시루를 열었다. 구름같이 하얀 김 속에서 먹음직스런 떡이 보인다. 떡이 제대로 잘 익었는지 궁금했다. 큰어머니는 젓가락으로 이 곳 저 곳을 돌아가며 푹푹 찔러 보셨다. 젓가락에 하얀 가루가 묻어 나오면 설익은 것이다. 다행히도 큰어머니의 얼굴이 비 개인 날의 태양 빛을 닮았다.

반듯반듯하게 썬 시루떡을 한 접시 수북히 담아 개다리 상에 올려놓는다. 이어 안방과 대청마루와 시렁 위에 놓았다. 부뚜막에도, 바깥마당과 대문 앞에도…. 그런데 큰어머니가 나를 부르셨다. 느닷없이 떡 접시를 주셨다.

“뒷간 앞에다 갖다 놓거라.”

나는 무서운 마음에 주뼛거렸다.

“그래야 밤중에 뒷간 갈 때 안 무섭지? ”

정말 그럴 리야 있겠는가.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라도 하여 마음의 불안을 없애 주고 새로운 용기를 심어 주려던 것이었을 게다.

그 중에서도 꼭 빼놓지 않는 곳이 있었는데 공동우물이다. 바가지로 풀 수 있는 작은 우물이었다. 펌프 물을 먹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물지게로 져 날라 식수로 썼다. 그 뒤로도 가뭄이 들면 텃밭의 물을 주는 것으로 유용하게 쓰였다.

큰어머니는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셨다. 그렇게 진지하고 엄숙한 모습은 본적이 없었다. 무엇을 빌고 계셨을까? 봄에 씨를 뿌려 싹이 났지만 심한 가뭄이 있었다. 물지게를 지고 이랑마다 고랑마다 퍼 날랐다. 어디 그 뿐인가. 추수를 앞두고 때아닌 물난리와 태풍도 왔다. 흉년이 들까 봐 또 얼마나 가슴을 조였겠는가. 그 힘든 일을 다 견뎌 내고 풍년을 맛보게 된 마음이 무엇엔들 감사하지 않은 게 있으랴. 그러니 많은 것을 얻은 만큼 이웃과 더불어 나누자는 뜻이리라. 특별한 종교가 없는 농부의 아낙이었다. 내년에도 올해처럼만 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뿐이었다. 한 해 동안 농사가 잘 되어야만 자식들과 살 수 있었던 시절이 아니었던가. 다 같이 어려웠지만 나눠 먹기에 더 큰 의미를 둔 우리 조상들의 지혜로움이 아닌가 싶다.

정성 들여 만든 고사떡은 집집마다 나눠지고. 사립문 너머로 돌담위로 따스한 정이 넘쳐흐르는 고향. 이 봄을 맞아 올 한해 그저 아무 병고 없는 풍년으로, 가을에는 더 풍성한 수확 거둬 곳간 가득 가득히 쌓이길 바란다.

noeul4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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