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500년 동안 충신정려(忠臣旌閭)를 받은 분은 세분이 있다.
일컬어 삼충신이라 한다.
첫째가 세조조 상왕 단종의 복위 운동을 꾀하시다가 같이 계획했던 동료 김질(1422 : 세종 4년∼1478 : 성종 9년)→(내촌면 음현리에 묘가 있음)의 배신과 고변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혹독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충신의 절개를 지킨 사육신의 한 분인 유응부(兪應孚) 선생이시며, 둘째가 선조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금산군수로 의병을 모집하여 항전하시다가 순절한 권종(權悰)선생이시며, 셋째가 인조조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임금을 호종하여 남한 산성에서 청나라 군사와 싸워 큰 전과를 올리고 순국하신 조득남(趙得男) 장군이시다. 그래서 나라에서는 이 세분에게 충신정려(忠臣旌閭)를 하사하고 그 충성심을 길이고자 하였다.
공교롭게도 충신 유응부선생께서 출생하시고 충신정려각이 있는 포천 땅에 충신 유응부선생을 배신하고 고변한 김질(金 )의 묘가 함께 있다는 사실은 어찌 보아야 할찌 모를 일이다.
유응부선생께서는 소흘읍 무봉리에서 출생하셨는데 선생의 자(字)는 신지(信之), 선장(善長)이셨으며, 호는 벽량(碧梁)이시다.
키가 크고 장엄하고 힘이 강하였으며 형제 우의가 돈독한 효자로 형제가 늙은 어머님을 모시고 송우리 장을 오고 가시며 활을 쏘아 어머님을 기쁘게 해드렸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특히 가난하고 청백하여 중국에서까지 충정의 노래가 퍼졌다한다.
무과에 급제하고 평안도 절제사(지금의 군단장급) 1455년(세조 1년)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內職)에 이르렀다.
님의 충정은 남효온(南孝溫)의 육신전에 자세히 전한다. 소흘읍 무봉리에 충목단이 있어 님의 시호 충목공과 함께 길이 전한다. 조득남 장군은 화현면 화성리에서 출생하셨는데 기골이 장대하고 용력(勇力)이 뛰어나 주위의 촉망받는 가운데 성장하여 광해군 13년(1621년)에 무과에 급제하고 정묘호란시 왕을 강화까지 호종하고 유흥치난을 평정하고 명나라 모문룡의 약탈을 진압하는 공을 세웠으며 1636년(인조 14년) 병자호란시 남한산성에서 결사 항전한 충신이었다.
권종(權悰) 선생은 소흘읍 고모리 하성릉에서 의병을 소집하여 조헌 고경명 등과 함께 경사항전하였으나 분사하였다. 아들 준(晙)도 함께 전사하였다.
나라가 바로 서려면 위 세분과 같은 충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세계 역사상 고려나 조선 같은 왕조나 삼국의 왕조가 그토록 수백년을 이어 올 수 있었던 것은 충신들의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선비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응부, 권종, 조득남 세 충신의 동상 하나 없고 세 충신을 길이는 행사따로 없으니 내 고향 포천을 선비의 고장이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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