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추시대 제(齊)나라에는 무도하게 음탕한 임금 제장공이 있었다.
이때 제(齊)나라에는 최저가 우상으로서 정권을 잡고 있었다. 최저는 동곽언의 여동생인 과부 당강에게 재취장가를 들었다. 당강은 그 용모가 당대 제일 절색이였다. 어느날 제장공은 최저의 집으로 행차했다. 이날 최저는 당강으로 하여금 제장공에게 술을 따라 바치게 했다. 그런데 제장공은 당강의 아리따운 모습을 보고 깊이 반해버려 당강의 친정오라비 동곽언에게 많은 뇌물을 주고 당강을 사모하는 간곡한 뜻을 부탁했다. 이에 동곽언의 주선으로 당강은 기회를 보아 제장공과 교정했다.
그런후로 제장공은 남모르게 자주 최저의 집에 행차했다. 남녀관계에 어찌 비밀이 있을 수 있으리오. 최저는 차차 눈치를 채게 됐다.
이때부터 최저는 제장공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제장공의 수하를 매수해 놓고 제장공의 모든 것을 살폈다. 또한 이후부터 집안단속을 철저히 해 나가 제장공은 당강을 만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제장공은 자나깨나 당강을 잊지 못했다.
그런 어느날 거(?)나라 임금 여비공이 제나라에 조공을 바치러왔다. 제장공은 거(?)나라 임금이 직접 조공을 바치러 온 것을 크게 기뻐하며 최저의 집근처인 북곽에다 잔치를 베풀고 거(?)나라 임금을 대접했다. 최저는 이제야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병이 났다는 핑계로 모든 대신이 참석한 잔치에 최저만이 빠지게 되었다.
제장공도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잔치가 파한 후에 문병을 핑계로 최저의 집에 가기로 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최저는 당강과 부하들에게 세심한 계획과 임무를 부여하고 많은 무사들을 매복시켰다.
한편 제장강은 잔치가 끝나기 급하게 당강을 보려고 최저의 집으로 갔다. 최저의 문지기로부터 최저가 병이 깊어 약을 먹고 사랑에 누웠다는 말을 듣고 제장공은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바로 당강이 있는 내실로 들어갔다. 못내 그리웠던 당강과 포옹하려는 순간 최대감이 당강을 찾는다는 시비의 전갈을 듣고 당강이 나간 빈 방에서 제장공이 홀로 있을 때 많은 무사들이 들어와서 제장공을 쳐 죽였다.
최저는 즉시 궁궐로 들어가서 새로 임금을 세우고 나라를 안정시켰다. 그리고 역사를 기록하는 태사백에게 분부한다. 「실록에다 제장공이 학질로 죽었다고 기록하오」그러나 태사백은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실록에다「여름 5월 을해일에 최저가 그 임금 제장공을 죽였다」라고 기록했다.
그후 최저는 이 기록을 보고 대노하여 태사백을 죽였다. 이때 태사백에게는 중, 숙, 계 세동생이 있었다. 다음 동생 “중” 도 역시 그형 백과 똑같이 기록하여 죽음을 당했다. 이어 그 다음 동생 “숙” 도 두 형과 똑같이 기록했다. 최저는 태사숙도 죽였다. 그러나 그 밑에 동생 “계” 도 죽은 형들과 같이 기록했다.
최저가 그 기록을 보고 기가막혀 태사계에게 말한다. 「너희 형 셋이 다 죽었는데 너 또한 생명이 아깝지 않느냐. 내가 시키는대로 쓰면 너를 살려주마」태사계가 대답한다. 「사실을 바른대로 기록하는 것이 역사를 맡은 사람의 직분입니다. 자기 직분을 잃고 사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났습니다. 옛날에 진령공이 죽음을 당했을때도 태사 동호는 조둔이 정승벼슬에 있었기 때문에 능히 그를 치지 못하고 붓으로 실록에다 ‘조둔이 그 임금 진령공을 죽였다’ 고 썼습니다. 그러나 조둔은 그 기록을 보고 아무말도 않했습니다. 즉 그는 권력으로도 사직을 맘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내가 쓰지 않더라도 반드시 천하에 이 사실을 쓸 사람이 있을 것이니 최우상이 저지른 일을 감출순 없습니다. 그러니 나를 죽이든 살리든 맘대로 하시오」그러자 최저가 기록을 태사계에게 던져주며 깊이 탄식한다.
염옹이 사기에서 이대목을 읽다 시로서 찬탄한 것이 있다.「나라에 법이 없어 난식적자가 계속 일어났도다. 능히 난신적자를 죽이진 못하나 붓으로 그들을 죽였도다. 사신은 죽는 것을 두려워않고 자기 사명을 다하지 못할까 두려워했도다. 하늘의 해는 밝고 밝아서 간특한 신하가 넋을 잃었도다. 슬프다. 권세앞에 아첨하는 자들이여. 이 사기를 읽고 부끄러운 줄을 알라」
옛 글이 이러하니 현대에도 모든 위정자들은 어찌 조심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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