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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생/각]달력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5년 03월 14일









조귀순 (포천시 가산면 출생, 수필가)




어렸을 때 안방에는 몇 개의 달력이 있었다. 안방문과 들창문 사이의 벽에는 아버지의 앉은키 높이로 항상 붙이는 것이 있었다. 반절(半切) 한 장에 사방으로 열두 달을 넣고, 가운데에는 정갈하게 양복을 입은 사진이 있다. 삼일절이 첫 번째 적힌 국경일과 입춘, 우수, 경칩에서 소한, 대한, 등의 절기는 따로 모아 적어 놓았다.

그 달력은 아주 오랫동안 얼굴사진의 위치가 중간에서 아래로 또는 조금위로 바뀌었을 뿐 다른 얼굴이었던 것은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맨 아래에는 민주공화당 국회의원 오치성 배상(拜上), 어느 해는 오치성 근제 (謹製) 근정(謹呈)으로 끝말만 달랐다.

그 맞은편 벽에는 초등학생인 내가 깨금발을 하여 넘겨볼만한 높이에 걸었다. 한 장에 한달씩 볼수 있고 사진은 인기 있는 여배우들이 대부분이었다. 문희, 남정임, 윤정희, 고은아… .
한복을 곱게 입고 비스듬히 옆모습으로 앉아 있거나 서 있고, 또 다른 달력은 짧은 치마나 판타롱 바지를 입은 양장차림이었다. 국회의원 오치성 대신 내의 양말을 파는 ‘호남상회’ 서울종묘’ 이다. 이불호청을 바꾸는 해에는 포목점, 혼수를 하는 해부터 몇 해 동안은 단골처럼 다복주단 이었다. 그러는 사이 배우들의 얼굴이 바뀌었다. 유지인, 정윤희, 장미희, 김창숙… .

그리고 차츰 배우들의 얼굴에서 경치가 수려한 산수화로.

그러나 뭐니 뭐니해도 아버지가 얻고 싶은 것은 일력(日曆)이다. 귀해서 더 그랬는지, 구했을 때는 매우 흐뭇해 하셨다. 서울에서 사는 고모까지도 시골의 사는 동생이 기뻐하시는 것을 알고 해마다 어떻게 해서라도 하나씩 구해 주었다.

“숫자가 커서 아랫목에 앉아서도 보구, 침침한 눈에도 시원하게 잘 보이는군.”

게다가 일반 달력에는 깨알만한 하게 초하루 보름만 겨우 기재된 음력날짜가, 일일이 제법 알아볼만한 크기로 씌어 있으니 얼른 알아보기 쉬웠다. 십간과 십이지의 따른 육십갑자와 동물그림까지 그려져 있다, 누구네 할머니 생신과 회갑, 잔칫날과 제삿날, 농사짓는데 필요한 절기와 장 담그는 날 등 일상생활을 음력으로 짚어가기에 제일로 꼽았던 것이다. 우리들도 여백이 넉넉한 일력에 내생일이라고 크게 써놓고 달력마다에는 빨간 색연필로 진하게 몇 겹씩 동그라미를 그려 놓았다.

어머니는 일력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한쪽 귀퉁이를 맞춰서 모서리에 반듯하게 포개어 접었다. 세모꼴을 위로 올려 고무줄로 묶어 놓는다. 왼쪽과 오른쪽으로 한번씩 돌아가며 끼워 놓으면 뾰족한 빗살무늬 꽃 같았다.

부모님께서 일력을 정말 좋아 하시는 또 다른 이유는 그 부드러운 미농지를 화장실 휴지로 쓰게 하는 것이다, 당신들은 밀가루포대종이를 비벼서 쓰시면서 헌공책보다 낫다며 우리에게 쓰게 하셨다. 일력에는 00상회보다 주로 금·은 ·보석·시계수리일체 하는 00당이 많았다.

요즘은 달이 바뀔 때마다 한 장씩 뜯어내 재활용폐휴지 상자에 넣는다. 그때에는 뒤로 넘겨두었다가 새 달력과 바꿔 달면서 묵은 달력으론 책 표지를 쌌었는데….

며칠 전 달력 한 장을 뜯어냈다. ‘희망찬 새해’ 라며 새 달력을 걸은 지가 바로 엊그제 같았다. 그런데 금세 한달도 아니고 두 달이 후딱 지나갔다. 열두 달 중 벌써 세 번째 달 중순이다. 세월의 속도는 나이와 비례한다고 하더니만… . 일력을 받아놓고 하나, 둘, 하면서 365장이 맞는지 세어보다가, 일흔일곱 일흔 여덟 까지 세어놓고 숫자를 잊어버려 세고 또 세던 일이 새삼스럽다.

“벌써 또 한달이 훌쩍 지나가는구나”

달력 한 장을 넘기실 때마다 하시던 부모님 말씀이 애련(愛戀)하다.


noeul40@hanmail.net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5년 03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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