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외에도 〈안사람 의병의 노래〉가 2개나 있고 〈의병경중가〉 3절 등이 전해오며 〈광복군 노래〉도 있다. 또 〈민족의 약동〉등이 전해 온다.
나라 잃은 슬픔을 딛고 뜨거운 애국심으로 또 피로 뭉쳤던 의병이나 독립군이나 광복군들이었기에 이 노래를 듣노라면 가슴 뜨거워 몸을 금할 길이 없다.
내고향 포천 출신의 의병은 너무나 잘 알려진 최초의 의병의 총 지휘부셨으며 대마도에서 순국하신 면암 최익현 선생이시며 님의 둘째 아드님 최영학의 아들 최면식(1891년 1월 17일∼1943년 7월 3일)선생께서도 독립군 군자금 모금책이자 의무원이셨다. 박복인(朴福仁) 의 병은 군량미 수집책으로 병참병이셨으며 윤유길(尹有吉) 의병도 독립군 군자금 모금책이셨으며, 이주호(李周鎬) 의병도 이민식(李敏軾) 의병도 군자금 모금책으로 활동하셨다. 조황(趙晃) 선생도 의열단원으로 중국 길림성 김원봉 단장 밑에서 국내 의병활동으로 파괴공작을 도모하셨으며, 김영관(金榮觀) 의병은 일본 왜군으로 징집되어 1944년 10월 중국 절강성 의오현에 주둔할 때 동지인 박승유, 신의철, 이의화 등과 함께 왜군을 탈출 임시정부 광복군 총사령부의 정보처에 편입되었다. 1944년 봄, 중국 유격대와 합동작전으로 정보·선전 공작을 전개하는 광복군 정규군 제3분처 소속이었다. 이렇듯 내 고향 포천에는 독립군, 의병 활동을 전개한 분들이 있다.
이들이 계시기에 오늘 날 우리는 행복한 민주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행방 후, 국방경비대(국군 창설 이전의 국군의 모태) 장병들이 부르던 군가를 부르며 의병과 독립군, 광복군의 애국심을 되새기고는 한다.
「무명지 깨물어서 붉은피를 흘려서/ 태극기 걸어 놓고 천세만세 부르자/ 한글자 쓰는사야 두글자 쓰는사야―/ 나라의 병정되기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