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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유 기 고]선악과 신구의 변주곡‘빈상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5년 03월 04일


홍 을 표
이해조문학회장


 양반 신분이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는 세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개화 양반의 딸이나 그 남편인 수구 양반의 자식이나 모두 기생출신의 첩과 그 몸종에게 당하는 꼴이 그대로 들어나 있다. 수구 양반의 자식인 서정길은 자기또래의 종인 유거복이만도 못한 눈뜬 장님이다.뚜쟁이의 잔꾀에 의지하여 첩의 욕망과 몸종의 기지에 모두 놀아난다. 이러니 개화 양반의 딸은 그대로 망할 판이다.

그런데 개화 양반의 딸과 쌍둥이인 아들 이승학의 개명된 판단과 모사는 이러한 답답함을 해결하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리고 이승학은 누이를 팔려갈 위기로부터 구하기 위해 지혜를 발휘하여 누이로 변장하여 일을 꾸미던 중 우연히 만난 옥희와 몸을 섞게 되고 그녀에게 진실을 토설한다. 제주에 귀양간 이승지 친견을 위해 남장으로 배를 타다가 배가 난파되어 생사를 모르던 이난옥을 찾던 중 인천부두노동자가 된 돌이의 도움으로 이승학은 누이를 만난다. 두 쌍둥이 남매는 극적으로 해후하고 승학은 개화 양반인 부모들의 자발적 동의까지 얻어 보란 듯이 옥희와의 언약을 지키며 결혼을 하게 되고 이난옥은 남편 서정길의 상해 유학 서신을 받고 기뻐한다.

작가의 개화 사상은 이승학을 통하여 그의 연애로서 실천되고 있으며 그것이 공허하지 않으은 것은 자신의 쌍둥이 누이를 이 위기로부터 구출하는 기지와 담력과 수완에선 나타난다. 그리고 고공이다가 자유노동자로 전락한 돌이의 존재가 눈에 뜨인다. 그는 첩의 몸종인 금분이에 매수되어 사체유기를 하나 이승학과의 만남으로 자신의 범죄 행위를 고변함으로써 그 책임을 면하게 되고 두 가해자를 체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수구 양반의 몰락한 천한 신분들의 생존을 위한 반란을 목도한다. 종들은 자신들의 신분적 제약 속에서도 최대한 스스로의 판단에 의하여 행동한다. 금분이, 유거복, 돌이, 놈이 등이 바로 그렇다. 각자가 하나의 재산과 같은 물건이 아니라 각자의 처지에서 나름대로의 판단에 따라 일관되게 행위하는 인격체로 드러난다. 이승희의 역할은 이들과의 유기적인 대립 혹은 협력의 관계를 설정하여 자신의 의도를 실천해 나간다. 그러므로 이승학의 동반자와 대립자는 보수 양반이 아니라 바로 이들이다. 작가가 보수 양반인 서정길을 징치하지 않고 상해로 공부하러 가는 것으로 설정한 것이 그것을 반영한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이난옥과 이승학이 쌍둥이 남매로 설정한 데 작가의 깊은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처첩 간의 갈등이 기본 서사 구조인데 실제 이난옥은 일방적으로 당하는 피해자이요 소설 전개에서 방관자 역할을 하고 있다. 오히려 소설은 그의 쌍둥이 남동생인 이승학에 의하여 전개되어 간다. 쌍둥이는 서로 상대의 고통을 공유하는 것일까? 그 일심이체의 쌍둥이가 이 소설의 실마리를 푸는 열쇠가 아닐까? 처첩간의 갈등은 제도의 문제이고 이것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님을 암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남성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음을 쌍둥이 설정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주제상의 처첩 갈등인 이난옥과 평양집의 갈등은 표면상으로는 이승학-유거복-돌이 대 평양집-금분이-화순집의 대결로 나타나는 것이다.

눈여겨 볼 인물은 유거복과 돌이다. 유거복은 자신의 처인 금분이의 악행과는 달리 그의 악행에 의하여 당하는 이난옥을 위하여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 제주 친견을 돕는다. 이 자의 행위의 동기는 서정길이 부용과 그의 모 화순댁이 이난옥을 황은율에게 팔아넘기려는 것을 알고 분개하여 이난옥을 돕고자 한 정의감에서 나온다. 서정길의 못난 것이 마치 자신의 탓이나 되는 것처럼 책임을 느끼는 사람이다. 돌이는 갑오경장 이후 노예 신분에서 해방된 자이나 돈을 받고 남의 집 일을 하는 고공 신분에서 자유노동자로 변신한 자이다. 이 자는 금분에게 돈으로 매수되어 복분이의 시체 유기를 하지만 이승학과의 만남으로 인하여 변심하여 자신의 행위를 다 고발하여 부용과 금분이를 옥에 넣는다. 그는 정신적으로는 근대적 각성이 없는 미몽이다. 아직도 묘자리의 발복을 신앙하며 지관으로 믿은 이승학의 도움을 받기 위하여 그에게 도움을 주지만 이것은 스스로의 이해를 추구해야 하는 자유 노동자들의 변화된 삶의 모습을 나타내 주는 한 면이라고 할 수 있다.

옥희의 존재가 신기하다. 그는 외형상 피해자이지만 실제로는 스스로의 판단에 의하여 이승학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기지를 발휘하여 그를 탈출시킨다. 옥희의 의식은 이승학 만큼이나 근대적임을 유추할 수 있다. 이승학도 옥희의 자신에 대한 진정성을 알고 서로의 언약을 지키게 된다. 비록 이승학의 권도로 몸을 빼앗겼으나 근대적인 사랑은 이난옥의 서정길에 대한 봉건적인 미련보다 고귀하고 빛난다. 그래서 처첩 갈등과 더불어 자유 연애와 새로운 결혼 제도를 제기함으로써 갈등의 해결이라는 대안을 제시하는 이 소설의 또 하나의 축이 된다.

평양집, 여종 금분이와 이승학의 대립각에서 양반 부부인 서정길과 이난옥은 액스트러이다.서정길은 나중에 상해로 가 공부하는 것으로 설정한 것도 서정길이 특별히 악인이 아니라 제도의 희생자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즉 처첩제도의 모순에서 나온 문제이지 서정길의 인간됨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으로도 이해된다. 집안에 한 남자에 부인이 둘이면 싸움이 나고 가정이 파탄되는 것은 피할 도리가 없다고 해석될 수 있다. 그러므로 축첩 제도가 있는 한 처첩간의 암투와 갈등은 필연이다. 거기에다가 재산을 노리는 개입자가 있으며 그 싸움은 치열성을 더해 결국 파국으로 가게 마련이다. 여기서 수구 양반의 자제인 서정길은 첩에의해 완전히 정보가 통제된 인물이다. 이것은 어쩌면 수구 양반들의 시대관을 역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그렇게 시대의 변화에 대하여 몽매하니 집안은 물론 나라 꼴이 잘 될리 없다는 것을 은연중에 나타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정길은 표면상 개회인처럼 보인다. 기실 구제도와 유착된 관계속에서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말아먹고 신문물을 오직 사치와 소비의 행태로 접수하는 모습이다. 개화 자체가 자본주의의 소비시장으로 흡수되는 지름길이었으니 수구 양반들의 재산도 소비로 탕진되어 패가망신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더구나 “개화장정(章程)에는 세전비(世傳婢)로 부리는 법을 금한다니까 법소를 차릴 수도 없고 하인성청법도 없어졌으니 사다듬이나 할 수가 있나”라며 개화로 인한 기득권 상실에는 강한 거부감을 갖는다. 그나마 잘못을 뉘우치고 상해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이러한 양반들의 개과천선에 대하여 아주 미련을 버리지 않은 작가의 계몽주의적 의도가 있는 것 같다.

포천신문 기자 / jun28258@gmail.com입력 : 2005년 03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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