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이어)미국의 DIP제도를 참조하고 있는 우리 법에 의하면 특별한 경우(대표자의 위법한 행위 등으로 파탄지경이 된 경우)를 제외하고 대표자가 관리인으로 선임됩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통계에 따르면 대표자가 관리인으로 선임되지 않는 회생사건은 연간 5% 내외에 지나지 않습니다).
굳이 관리인 선임 절차가 필요가 있는지, 반대로 특별한 경우에만 관리인을 선임하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은지, 의혹이 생깁니다. 이번 호에는 관리인을 선임하는 이유와 관리인의 행위능력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무엇보다 관리인은 선임하는 이유는 법원이 채무자 회사를 관리하기 용이하게 때문일 겁니다. 관리인은 일정한 행위에 대하여 법원에 허가를 받아야합니다. 또 주요 업무의 진행상황 및 추진실적을 보고해야 합니다. 법원은 관리인을 통해 회사를 관리하며, 채권자들에게 대한 변제계획 등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지 여부를 점검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관리인제도를 두는 이유는 회생절차 개시 전후의 행위에 명백한 차등을 두기 위한 것입니다. 홍길동이 대표자로서 행한 행위와 관리인으로서 행한 행위는 법률상 그 지위가 명백하게 달라집니다. 회생절차 개시 후 채무자의 행위는 관리인에게 그 효력을 주장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법 64조1항). 이때 법률행위란 매매, 임대차, 권리의 포기, 채무의 승인 등 채무자의 재산에 관한 모든 행위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개시 후에 홍길동이 제3자에게 회사건물에 임대계약을 체결한 경우를 생각해보겠습니다. 홍길동은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면서 임대인 표시를 ‘대표이사 홍길동’이라고 명시하고 도장을 날인하였습니다. 임차인은 대표이사 홍길동과 관리인 홍길동이 같은 사람이기에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임차인은 채무자 회사에 대표이사 홍길동이 체결한 계약에 대하여 이행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대표이사 홍길동이 개시결정으로 인해 관리인이 선임되었더라도 공적지위에 있는 관리인 홍길동은 제3자와 체결한 임대차계약를 해지 내지 해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관리인이 채무자가 행한 법률행위에 대하여 추인(추후 승인)한 경우에는 비로소 그 행위가 법률적으로 적법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관리인은 개시결정 당시에 쌍방 미이행계약에 대하여 회사가 불리하다고 판단한다면, 본인이 대표이사일 때 체결한 계약이더라도 해지, 해제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개시 전 채무자 회사가 행한 법률행위에 대해서는 어떨까요. 관리인은 채무자가 과거에 행한 법률행위를 부인할 수 있습니다. 이를 관리인의 부인권이라고 합니다. 부인권의 행사는 관리인 또는 관리인에 준하는 자에게만 한정됩니다. 관리인이 부인할 수 있는 행위는 회생절차 개시 전에 채무자가 회생채권자, 회생담보권자를 해하는 것을 알고 한 행위 또는 다른 채권자와의 평등을 해하는 변제, 담보제공 등입니다.
관리인 홍길동은 대표이사 당시 본인이 행한 재산처분행위 등을 부인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A라는 채권자의 압박에 못 이겨서 회사재산에 근저당설정을 해줬다면, 그 행위를 관리인 홍길동은 부인할 수 있습니다. 그밖에도 관리인은 편파적인 변제를 하였다면 그 행위, 어음·수표의 발행 행위, 부동산의 처분행위 등에 대하여 부인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부인권의 행사는 재판에 의해서 하게 되며, 부인권의 청구로 인한 효력은 원상회복의 효력이 있습니다. (관리인의 부인권에 대해서는 추후에 충분한 지면을 가지고 다루겠습니다).
어찌보면 현상적(혹은 생물학적)으로 같은 사람인 관리인이 자신이 대표이사 지위에서 행한 행위를 부인한다는 것은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법률은 관리인을 채무자와 전혀 다른 법적 주체(legal entity)로 보고 있습니다. 이전 경영자를 관리인으로 선임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전혀 별개의 법적주체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