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병원 영안실 계단을 동료의 부축을 받으면서 지하 영안실에 도착하니 쓸쓸하고 차가운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아들 친구들이 달려와서 웅성웅성 하면서 아들 영정사진을 진열하고, 하나 둘씩 가족 친지가 모이고 있었다. 나는 영정사진을 쳐다보면서 ‘정호야’를 부르며 통곡하며 울부짖었다.
목메어 불러 봐도 소용없는 아들, 나는 어떻게 살라고 혼자 떠나느냐면서 땅을 치며 뒹굴면서 울부짖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며느리, 사돈 식구들, 정호 친구들, 지인 등 모든 이들이 애타게 목이 터지도록 ‘정호야! 정호야!’를 부르지만 떠나간 아들은 대답이 없었다.
저녁이 되면서 대전 처남형제도 정신 없이 달려와 나에게 물었다. 어떻게 정호가 세상을 떠났느냐고? 확인한 결과 동료 직원이 얼마 전 부산에 사는 여동생이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아들이 야간근무를 마치고 오전 9시경에 나하고 통화를 하고 잠이 들었는데 술에 만취한 동료가 아들을 성폭행범으로 착각을 하고 운동기구 아령으로 잠들어 있는 아들의 머리를 서너 번 내리쳐서 순식간에 아들이 살해된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전해들은 처남은 어이가 없는 듯 멍하니 말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항상 공무원 시험을 대비하여 책을 끌어안고 생활을 하다가 사고 전날인 6월 12일 공무원 합격통지서를 받아들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다음날 나는 물만 목을 축이면서 나흘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있으니 기운이 떨어져서 거동이 힘들었지만 정신력으로 지탱하고 다음날 교회 목사님을 비롯 교인들이 오셔서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부르는데 흘러내리는 눈물 콧물을 어찌 글로 다 표현할 길이 없다.
여의도 아우 달재가 형 좀 보자고 하면서 조용한 곳으로 가서는 백만원짜리 수표를 나의 손에 쥐어 주는데 나의 마음은 무너지는 느낌. 저녁 영안실 차가운 바닥에 있으니 아우는 나를 붙잡고 형님 불쌍하다고 달기똥같은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우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너무너무 통곡을 하고 울부짖어서 울 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지만 하느님께 ‘저를 도와 주소서’ 하며 기도를 올린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