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 13일 초여름 오후 한나절, 40대 초반의 남성이 봉고차를 타고 들어오더니 이발하는 내게 이발을 중단하고 봉고차에 탑승하라고 말했다. 이발하던 손을 놓고 봉고차에 탑승했다. 차는 정신없이 포천방향으로 달렸다. 남성은 약방에서 우황청심환과 박카스를 구입해 내게 권유하길래 영문도 모른체 복용했다.
차는 쏜살같이 포천경찰소로 달렸고 나는 수사과로 안내됐다. 벌써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경찰로부터 아들이 살해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들을 살해한 범인 한병우는 경찰서에 자수를 해 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꿈인지 생시인지 넋을 잃고 말았다. 오전 9시20분경에도 아들과 통화했는데, 아들이 살해되어 세상을 떠났다고하니 도무지 실감이 가질 않았다.
나는 경찰서 입구 마당에서 데굴데굴 구르면서 정호를 살려달라고 땅을 치고 울부짖으면서 대성통곡을 했다. 검은 구름도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슬피우는 나를 보고 있었다. 땅을 치고 아무리 울어봐도 소용없었다. “정호야, 정호야” 목메어 불러봐도 소용없는,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됐다.
경찰서 뜰에서 대성통곡 하는 나를 바라보는 직원도 눈시울을 붉혔다. 왜 나를 두고 떠나가느냐고 소리쳐 불러봐도 소용없었다. 아내도 일찍이 세상을 떠나고 아들마저 세상을 떠나니 나는 누구를 의지하고 사느냐고 울부짖었다.
나는 정신을 잃었고, 동행한 사람이 나를 부추겨 봉고차에 탑승시키고 그 차는 송우리로 향했다. 차에서 정신을 조금 차려 이게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차는 어느덧 송우리 우리병원에 도착했고 기사는 나를 부축해 영안실로 향했다. 몸이 도무지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무거웠다. 계단을 한계단 두계단 끌려가다시피 내려갔다. 눈앞에 ‘이정호’라고 쓴 명찰을 발견한 순간 나는 정신을 잃고 계단에 쓰러져 뒹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