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일 후 대전 처남한테서 오십만 원을 받아 등록금을 냈지만 매일매일 생활비와 나의 약값, 세상의 모든 물가는 너무 비싸게 느껴지고 콩나물로 국 끓여서 생활하기도 힘이 들었습니다. 몸이라도 정상이면 노동판에서라도 일을 하겠지만 내 몸도 제대로 못 가누면서 무슨 노동판인가 생각했습니다.
초여름은 지나고 땀이 많이 흘러내리는 더운 여름이 왔습니다. 산에는 녹음이 우거지고 산과 들에 새소리가 들려오던 어느 날 “석가탄신기념일 특집방송‘으로 KBS방송국에서 미스코리아 몇 분이 포천 산정호수에 방문하여 봉사 촬영을 하기에 본인도 참석했습니다. 1, 2급 되는 장애인들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면서 생활을 하는 포천 장애인 50여 명이 선정되어 산정호수에서 놀이기구도 타고 즐거운 야외활동을 하는 동안 본인도 절룩절룩 하면서 휠체어를 밀고 다니며 즐거운 하루를 보냈습니다.
부족한 죄인을 하나님의 보호로 봉사 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사랑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리고 즐겁고 감사한 시간을 보내는 중 한 장애인 아동이 서울 잠실 야구장에 가고 싶다고 하여 장애인들과 저는 난생처음 잠실 야구장 구경을 하게 되었습니다. 장애우들은 야구경기를 관람하면서 동심으로 돌아가 소리를 지르고 홈런에는 박수를 치면서 기쁘고 즐거운 하루를 감사히 마치게 되었습니다.
저는 시간만 나면 장애인 작업장을 방문하여 장애인들과 대화도 나누고 웃기도하면서 장애인들과 친숙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송우리 고모리에 사는 장애인 정씨가 엔진이 달린 휠체어를 타고 저의 업소를 방문했습니다. 김치를 담아 정성스럽게 가지고 와서는 저를 이상한 눈치로 보이기에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김영환 회장에게 저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부족하지만 저를 짝사랑하는 정 여인이 있으니 행복했습니다.
시간은 지나 12월 31일 연말 저는 평소 천원 이천원 저축하여 몇 만원을 만들어 작업장을 찾았습니다. 연말이라고 해도 외부인사 찾아가서 격려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저는 장애인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본인은 가난하여 짜장면 한 그릇씩 시켜 줄 수 밖에 없어 망년회치고 쓸쓸한 망년회이지만 격려하고 칭찬하면서 희망을 가지고 살면 반드시 큰 축복과 영광이 살며시 찾아온다는 말을 하고 새해인사 왔다고 격려를 했고 모든이들의 박수를 받으면서 한해를 마무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