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kg 되는 약한 몸에 사리돈 중독으로 시달리는 처. 아들은 강원도 상지대학교에 야간을 다니면서 주간에는 화장지 공장에 취업하여 학비를 벌어서 보태였습니다. 이 모든 것을 보고 있는 가장인 본인은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저의 마음은 칼로 도려내는 것 같은 고통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약한 몸으로 50만원의 봉급을 받아 저의 손에 쥐어주는 저의 처를 보는 본인은 정말로 죽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이렇게 괴로운 심정을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저의 처는 저를 보고 울보라고 놀리곤 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통장의 돈은 바닥이 나고 밀릴 때도 있었습니다. 어느날 학생 2명이 찾아와서 이발을 한다길래 돈이 떨어져서 운동장을 돌면서 음료수 한병 사먹지 못한 생각이 나서 억지로 억지로 이발을 해주어서 8천원을 벌었습니다.
식구한테 8천원을 벌었다고 이야기 하는데 학생 부모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학생머리 망쳐놨다고 불벼락 같은 항의가 왔습니다.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고 다음날 고쳐준다고 통사정을 했습니다. 그 학생 머리를 다듬어 주고나니 몸과 마음은 천근만근 더 무거웠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부터는 요금은 50%를 받고 면도는 못한다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이발을 한다고 하는 손님만 오면 마음은 덜컹 덜컹 떨렸습니다. 몸은 말을 안들었으니 심정은 괴로울 뿐 하나님께 기도를 올립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소서 이 몸이 완치되면 이웃과 나라와 모든 이를 위하여 남은 생애를 열심히 살겠노라고 주님께 눈물로 기도를 드립니다.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찬송가를 부르면서 주님만 의지하겠노라 눈물로 눈물로 기도만 했습니다.
94년 9월 1일부터 이발일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마비된 몸으로 이발을 하니 손님머리를 망쳐서 혼도 많이 났습니다. 어떤 손님은 본인이 안타까워서인지 만원짜리를 주고 가시니 당장 어려운 살림에 큰 보탬이 됐습니다.
그런대로 세월은 흘러 흘러 아들 정호가 의경으로 입대하기 위하여 떠났습니다. 떠나는 날 억장이 무너지고 가슴아픈 사연 어찌 글로 표현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모든 아픔은 뒤로한채 93년 9월 금현리 가옥을 처분하고 마산리에 땅을 구입해 97년 7월 19일 주택을 완공하고 처와 즐거운 마음으로 입주잔치를 벌였습니다. 많은 주위 분들이 축하해 주었습니다. 그나마 이런 조그만 행복은 어두운 나의 삶에 한줄기 빛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