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원에서 일하던 시절, 일이 끝나고 식사를 한 후 숙소로 돌아가는 길가에는 달맞이꽃이 참 많았었다. 낮에는 꽃잎을 닫고 있다가 저녁부터 새벽까지 달빛을 맞으며 활짝 피어나는 밤의 요정 같은 꽃이다. 달맞이꽃의 영명도 ‘Evening Primrose’이다. 이 달맞이꽃이 활짝 핀 모습을 꼭 한번 사진기에 담고 싶었는데, 이른 새벽에 사진을 찍으러 나가는 길에 아직 예쁘게 피어있는 달맞이꽃을 발견하고는 반가워 열심히 찍었던 기억이 난다.
달맞이꽃은 바늘꽃과의 월년초(越年草, 2년초)이다. ‘월년초’라는 것은 여러해살이나 한해살이와는 달리 가을에 씨앗이 떨어지면 이듬해 싹이 나와 방석 같은 모양으로 땅에 붙어 자라다가 그 다음해에 새순이 나와 꽃을 피우고 종자를 맺은 후 생을 마감하는 식물을 말한다. 키는 50-90cm까지도 자라며, 7-8월의 여름 밤, 4장의 노란 꽃잎이 피어나고 아침이면 시들어 약간 붉은 빛이 돈다.
달맞이꽃은 왜 밤에만 피어나는 것일까? 그 해답은 달맞이꽃의 수정을 도와주는 곤충에 있다. 바로 박각시나방이 그 주인공인데, ‘박각시’라는 이름은 달맞이꽃처럼 밤에 꽃잎이 벌어지는 박꽃을 찾아가 꿀을 얻는, 신랑인 박을 찾아온 각시라는 뜻이다. 서로 경쟁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밤을 택한 참 지혜로운 식물이다. 그런데 그 지혜로움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 박각시의 몸통은 비늘조각으로 덮혀 있어 꽃가루가 잘 붙지 않는데, 달맞이꽃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가느다란 실 같은 것에 꽃가루들을 줄줄이 꿰어 놓아서 박가시나방의 한 부위에 한 번 묻게 되면 마치 실타래가 풀리듯 줄줄이 풀려 나와 한번에 많은 꽃가루의 운반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 이 이야기를 알게 되고나서 수술을 가만히 살펴보니, 과연 실타래 같은 것이 수술에 엉겨있는 것이 보였다. 정말 식물의 세계도 알면 알수록 신비하고 놀라운 점들이 많다.
누구에게나 익숙하고 흔한 이 달맞이꽃은 우리나라 토종 같지만, 사실은 먼 아메리카 대륙의 칠레가 본 고향인 귀화식물이라고 한다. 보통 귀화식물이라 하면 나쁜 인식부터 들기 마련인데, 달맞이꽃은 우리에게 유용한 식물이기도 하다. 달맞이꽃의 까만 종자에서 기름을 짠 것을 ‘달맞이꽃종자유’라 하여 약용으로 쓴다. 종자유는 ‘감마리놀린산’이라는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혈액순환과 콜레스테롤 개선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천연화장품의 원료로도 이용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