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이때쯤이었다. 아직은 쌀쌀한 봄바람이 불던 날, 점심을 급하게 먹고 평강식물원의 고층습지에 사진기를 들고 열심히 뛰어갔었다. 바로 그 곳에 활짝 피어있을 ‘얼레지’ 꽃을 사진기에 담기 위해서였다. 급하게 가느라 갔는데, 이미, 부장님과 지금의 신랑이 된 팀장님이 그 자리에서 몸을 거의 바닥에 붙여가며 열심히 사진을 찍고 계셨다.
우리 모두 식물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쉴 틈 없이 바쁜 봄철에는 금새 피었다가 자취를 감춰버리는 녀석들을 놓쳐버리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그날만큼은 다들 작정을 하고 올라오셨는지, 같은 마음과 열정을 품고 올라온 동지들이 있어 더 즐거운 시간이었다. 지금까지도 얼레지를 보면 그날 그 순간을 추억하게 된다.
얼레지는 백합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한 장씩 또는 두 장씩 땅에 붙어 자라는 잎은 아기 손바닥처럼 넓적하고 검은 무늬가 있어 쉽게 구분된다.(한 장만 달린 개체는 그해 꽃이 피지 않는다.) 그 잎들 사이로 꽃줄기가 올라오고 고개를 숙이고 얌전히 기다리던 꽃봉오리는 꽃잎이 활짝 열리면서 뒤로 완전히 젖혀진다. 꽃 잎 안에는 W자 모양의 무늬가 있어 독특하다.
길게 나온 보라빛 암술대와 수술대는 얼레지 꽃을 더 멋지게 꾸며준다. 이 아름다운 꽃을 보고는 간혹 열심히 캐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다 헛수고이다. 얼레지는 땅속에 둥근 덩이줄기가 있고 그 덩이줄기에는 가늘고 긴 땅속줄기가 이어져 있어 그것을 온전히 캐내는 것도 어려울뿐더러 캤다고 해도 모두 무사히 옮겨와 심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신기한 점은 이 땅속줄기의 길이로 얼레지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매년 땅속 덩이줄기의 길이만큼 땅속으로 깊이 들어가는데, 예를 들어 땅속 줄이가 땅속으로 60cm정도 들어가 있는데 덩이줄기의 길이가 3cm이면 20년 정도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얼레지의 잎은 나물로 먹기도 하고, 또 전분 성분이 있는 비늘줄기(인경)을 말려서 가루를 내어 밥을 지을 때 넣어 먹기도 했다. 또한 약용으로도 쓰이는데 한방에서는 편율접분(片栗澱粉)이라는 생약명으로 이용한다. 봄이나 여름에 채취한 인경을 채취하여 말리거나 생것을 그냥 이용하는데 건위, 진토(鎭吐), 지서(止瀉) 등에 효능이 있어 위장염, 구토, 화상, 최고급 전분 원료를 쓰이며 물에 달려 마시거나 생잎을 찧어 상처에 부치기도 한다.
수수한 우리 자생 야생화와는 사뭇 다르게 화려한 얼레지의 모습을 보면 봄바람난 여인이 새로 산 화사한 봄옷으로 한껏 멋을 부린 모습이 떠오른다. 사람생각은 같은지, 꽃말이 바람난 처녀, 또는 질투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