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자은이 공부하러 간다고 날씨가 아주 좋나보구나” 교수님께서 모처럼 만에 활짝 갠 하늘을 보시며 흐뭇한 표정을 지으셨다. 대학원에 들어와 처음 식물조사를 나간 날이 이토록 화창하다니 왠지 좋은 예감이 들었다.
예년보다 오래 지속된 추위 때문에 식물들의 움직임은 아직 활발하지 않았지만 싱그러운 봄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부지런한 나무, 귀룽나무가 그 수많은 가지마다 작은 잎새를 내어 봄 햇살에 반짝였고, 딱총나무도 마주보며 싱싱한 새잎을 밀어내고 올괴불나무도 수줍게 꽃을 피워 맞아주었다.
신갈나무와 밤나무가 많아 부엽이 두텁게 쌓인, 폭신한 낙엽수림의 가파른 사면을 거의 기어가다시피 조심조심 내려가고 있을 때었다. 보랏빛 열두 폭 치마를 닮은 꽃, 처녀치마가 눈에 들어왔다.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한참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처녀치마는 백합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위쪽이 더 넓은 도피침형인 잎들은 줄기와 땅이 만나는 지점에서 마치 방석처럼 둥글게 퍼져 달린다. 흔히 이른 봄에 꽃이 피는 대부분의 식물들은 계절이 지나가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처녀치마의 잎은 늦은 가을까지도 푸르러 관상용으로 심기에 아주 좋다.(반 그늘진 장소에 지피용으로 군식 하면 좋다.) 올해는 고라니들이 먹을 게 부족했는지, 여기저기 뜯긴 자국이 많았다.
꽃은 4월 즈음 줄기 끝에 3-10송이가 모여 달린다. 이렇게 모여달린 모습이 옛날 처녀들이 입던 치마와 닮아 ‘처녀치마’라는 이름이 붙었다는데 치맛자락풀, 성성이치마, 또 자화호마화(紫花胡麻花)라고도 한다. 꽃이 핀 후 시간이 흐를수록 빛깔이 바뀌는 것도 참 독특한데, 처음엔 옅은 보라였다가 점점 붉은 녹색이 감돈다. 아주 드물게 흰색 꽃이 피는 개체들도 있는데, 이를 ‘흰처녀치마’라고 부른다. ‘처녀치마’라는 이름 때문에 꽃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 좀 미안하지만, 꽃잎 안에는 꽃잎보다 길게 나오는 수술이 6개있고, 수술보다 길게 나온 암술머리에는 3개의 돌기가 있다. 꽃이 지고 여름에 결실되는 열매는 3갈래로 갈라져 재밌는 모양이다.
이번 주말, 봄날을 더 설레게 해주는 봄꽃들을 만나러 가까운 산에, 식물원에 가보는 건 어떨까. 다음 산행이 또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