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를 켜면 바탕화면에 제일 먼저 나타나는 박스다. 하루하루 가슴이 철렁하는 소리가 커진다. 내 가슴이 이렇게 긴장되는데 딸아이는 이 숫자를 보며 얼마나 마음에 부담이 될까? 물론 촌음이라도 헛되 쓰면 안 된다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조이는 듯한 스트레스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인지 아이가 여간 민감하고 까칠한 게 아니다. 부모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 조심해야 하고 밥먹으라는 말조차 눈치보아가며 해야 한다. 금방이라도 쨍하고 깨질 것 같은 불안감이 있고 잠자는 시간 다섯 시간 남짓 빼고 그 어느 순간에도 아이가 마음이 흔들리거나 상하면 그날의 공부에 막대한 지장이 생기는 게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이건 상전도 그런 상전이 없고 수험생을 가진 부모는 자식을 교육 시키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인격 수양 내지는 인내심의 도를 닦는 것 같이 어렵다.
어느날 잠결에 아이 울음소리가 들려 깜짝 놀라 깨어 거실로 나가보니 문제지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왜냐고 물어도 대답은커녕 점점 더 격렬하게 소리 죽이며 운다. 더 이상 말 부칠 수가 없어 그냥 실컷 울게 내버려 두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는 어미의 가슴은 안쓰러움에 심장이 녹아내리는 것 같고 대신할 수만 있다면 내가 무엇이든 다 감수 하고픈 심정이다. 한참 후 딸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없이 도닥거려 주었다.
“엄마 너무너무 힘들어. 풀어도 풀어도 잘 안 돼. 한 문제 가지고 한 시간이나 씨름했는데 답이 안 나와. 수능 날짜는 다가오고 진도는 못나가고 미치겠어. 내가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가봐. 어떻게 하지 점점 더 난이도 높은 문제와 싸워야 하는데. 또 명문대 합격해서 엄마 기쁘게 해드려야 하는데.”
코끝이 찡해지며 뭐라 시원하게 해 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과여서 수리는 필수다. 아니 필살이다. 마음 같아서는 ‘그까짓 대학 아무데나 나오면 어떠냐. 대학 안 나와도 잘살고 못 사는 건 팔자요. 운명이다’라고 하고 싶었으나 그렇게는 또 할 수 없는 일.
“딸아! 건강이 최우선이고 그 다음이 공부야. 너무 애쓰지마. 명문대 이름 있는 과 못가도 엄만 괜찮아. 대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란다. 또 대학이 행복과 정비례 되는 것도 아니란다.”
빨갛게 충혈 된 눈을 굴리더니 조금은 마음이 안정 되었나 보다. “엄마 미안해 놀랬지? 나 세수하고 조금만 더 하다 잘게. 얼른 들어가 주무삼.” 딸아이를 분만 하던 날 처럼 밤새워 하느님, 부처님, 모든 천지신명께 간절히 간절히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