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차례상 제물을 준비했다. 상하지 않는 제물은 미리 준비해 놓고 전이며 산적, 나물 등은 설날 새벽 일찍 일어나 만들었다. 올 사람도 갈 데도 없는 처지인지라 망부가 좋아하는 것들을 중심으로 정성껏 조금씩 장만했다. 얼추 되어 가는데 딸이 일어나 돕겠다고 나선다.
“딸, 한복 갈아입고 엄마가 해 놓은 음식 차례상에 올리도록 해라” “네 엄마, 아빠 만나는 데 예쁘게 할께요.”
머리를 하나로 묶고 한복을 단정히 입은 딸은 이제 제법 익숙하게 상을 차린다. “엄마 포가 빠졌네요.” “아 포? 쪽방에 사다 놓았는데 거기 가볼래? 그리고 현관문을 열어 놓아라. 아빠 들어오시게.”
나도 망부가 좋아 하던 한복으로 갈아입고 떡국을 떠서 들어가니 딸이 촛불도 밝혀놓고 향도 피워 놓았다. “딸, 먼저 천지신명에게 예를 드리도록 해야지?” 딸이 천지신명에게 세배로서 고하고 첫잔을 받아 향 위로 돌려 잔 자리에 놓고 절을 올린다.
“여보, 수정아빠 오랜만이시구료. 당신 만두 좋아해서 많이 떠 놓았어요. 맛있게 배불리 드세요. 우리 딸 수정이 올해 원하는 대학에 꼭 들어갈 수 있도록 당신이 도와주셔야 해요. 당신, 딸 엄청 사랑 했잖아.” “엄마, 이번엔 엄마가 아빠한테 잔 올리셔야죠.” 딸이 잔을 부어준다. 손이 떨리고 있다. 아빠에 대한 그리움이 솟는가 보다.
“여보, 살아있는 동안 잘해 드리지 못해 그저 죄만스러워요. 그리고 먼저 보내 마음이 아파요. 병석에 누워 있어도 남편이 있어야 한다는 말 무슨 뜻인지 뼈저리게 느낀 적이 한 번이 아닙니다. 여보, 여보…” 망부에게 할 말이 많았는데 원망도 하고 싶었는데…. 그저 설움이 복받쳐 슬퍼지며 엎드려 통곡할 것만 같았다.
“엄마 이제 제가 잔 올릴게요” 마지막 잔을 따르며 나는 또 망부에게 간절히 소망했다. “맛있게 배불리 드셨수? 여보 다음엔 기일에 만나요. 그동안 우리 모녀 건강지켜 주시고 저 보험 계약 잘 되게 해주세요. 힘들어요. 산다는 것이 여러가지로 힘들어요.”
차례가 끝났지만 딸과 나는 망연히 앉아 있었다. 회한이 가슴속에 서리며 눈물이 흘렀다. 딸이 말없이 지방을 들고 망부를 배웅하러 나갔다 들어온다. 정신을 가다듬고 떡국을 데워 딸과 마주 앉으니 딸이 음복주를 따라주며 위로를 한다.
“엄마 힘내세요. 이제 더 열심히 해서 엄마가 만족해 할 대학에 입학해 아주 기쁘게 해 드릴게요. 그리고 처음 입학 때까지만 준비해주시면 제가 다 알아서 대학 졸업할게요. 엄마는 그저 더 이상 늙지 않도록 건강과 미용에만 신경 쓰시고 마음 편히 가지세요. 엄마 사랑해요.”
콧끗이 시큰해진다. ‘그래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내 딸아 올 한해도 우리 씩씩하게 힘껏 살자꾸나. 엄마는 우리 딸 수정이가 있어 정말 행복하단다. 아빠도 천지신명도 틀림없이 우릴 보호해 주실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