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식물원에는 살아있는 온도계가 있다. 정확한 수치로 나타낼 수는 없지만, 영하로 떨어지는 날씨에는 어김없이 작동한다.
며칠 전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에 이 온도계가 작동하는 것을 목격했다. 겨울이면 추위에 적응하기 위해 잎을 돌돌 말아 꼭 시든 것처럼 차렷 자세를 취하는 나무, ‘만병초’이다. 사실 꽃이 정말 아름다운 나무인지라 꽃이 피는 시절에 이 식물을 소개하고 싶었지만, 겨울이면 만병초의 독특한 지혜로움을 엿볼 수 있기에 이야기하려 한다.
만병초는 진달래과에 속하는 늘 푸르고 잎이 넓은 작은 키 나무이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진달래나 철쭉은 늦가을에 잎을 떨구지만, 만병초는 추운날씨에도 그 푸르고 커다란 잎사귀를 달고 있다.
이러한 특징을 봐서는 남부지방에 살지 않을까 싶지만 백두산, 설악산, 울릉도의 성인봉, 오대산 등 고산의 깊고 외진 곳에서 살고 있다. 가지 끝에 5-7개씩 긴 타원형의 잎이 모여 나고, 여름이 가까워지면 희고 아름다운 꽃이 부케처럼 동그랗게 모여서 피어난다. 어떤 사람들은 이 나무를 보고 한라산에서 많이 봤다고 하는데, 그것은 만병초와 잎이 비슷하게 생긴 ‘굴거리나무’를 보고 오해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만병초 이외에도 울릉도에서 자라는 꽃이 붉은 홍만병초와 백두산 정상부근에 멋진 군락이 있는 노란만병초가 있다. 우리 평강식물원에는 우리나라 만병초 이외에도 다양한 품종의 만병초들이 만병초원에서 자라고 있는데 이는 외국에서 한 뼘 정도 되는 삽수를 들여와 뿌리를 내려 키운 것들이다.
외국에서는 이 만병초 종류들이 정원수나 가로수로도 심겨져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기후와 토양조건 때문에 쉽게 키우기 어려운 식물이다. 그래서 우리 식물원은 자생지를 조사해 연구하여 만병초류가 잘 자랄 수 있는 정원, 만병초원을 만들었다.
만병초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만병에 쓰는, 한방에서 중요한 약용식물이다. 생약명은 만병초, 석남엽 또는 풍엽이라 한다. 내상음위를 고치고 강장과 최음효과가 있으며 특별히 여자들이 오래 복용하면 정욕이 높아진다는 소문이 있다. 고혈압을 비롯하여 강장제, 이뇨제, 신장약으로 주고 쓰이며 감기, 두통, 불임증, 발기부전, 관절통에도 처방한다. 그러나 이 만병초 잎에는 유독성분이 있어 함부로 사용하면 마비증세가 올 수도 있어 위험하다.
약효 때문에, 또 꽃의 아름다움 때문에 무분별한 남획으로 멸종위기에 이르러 환경부에서는 이를 ‘멸종위기식물 2급’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지금은 자연도 ‘쉼’을 누리려는 계절이기에 식물원에 오면 화려한 꽃을 보지는 못하지만, 내년에 잎과 꽃으로 피어날 잎눈, 꽃눈들이 달린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흥미로워질 봄을 준비하며 쉬어갈 줄 아는 식물이 참 지혜롭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