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 쯤이면 평강식물원과 처음 인연을 맺은 때가 생각난다. 여름방학 때 실습을 나가야 했는데, 식물을 현장에서 배우고 싶은 욕심에 다른 학생은 잘 가지 않았던 식물원을 택했었다. 그 때 처음 호미를 들어보고, 삽을 만져보았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지금 ‘가드너’라는 직업을 갖게 했다.
그 때 그 계절에 피어나 인상 깊게 만난 식물이 있다. 몸매는 범부채를 닮고 얼굴은 붓꽃을 닮은 꽃, 대청부채이다. 이 꽃은 오후 3시 경에 열려 6시경에 활짝 피고 밤에 다시 돌돌 말아버리는 습성이 있어 시계역할까지 해준다. 이런 신기한 특징 때문에 그 당시 익숙치 않았던 식물이름 중에서도 "생물시계"인 대청부채는 기억에 꼭 남아 있었다.
이 대청부채의 꽃이 만개하는 사진을 찍고 싶다면 오후에 나서는 것이 오랜 기다림을 피하는 방법이다.
대청부채는 환경부에서 지정한 멸종위기식물이다. 중국에는 중부에서 몽고와 만주를 거쳐 시베리아 동부까지 분포하는 식물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983년에야 뒤늦게 ‘대청도’라는 섬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대청부채"라는 이름이 붙었다. 옛 문헌에 보면 중국의 원나라 마지막 황제인 순종이 궁 안의 파벌싸움으로 어릴 때 고려의 땅 대청도에 유배되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중국에 있는 이 식물이 유독 외딴섬에만 자생하는 이유는 이 때 함께 온 종자들이 퍼져 나간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연보라 빛의 가련한 꽃인 대청부채는 관상가치도 높다. 비교적 종자발아도 잘되고 포기나누기로도 쉽게 번식할 수 있는 편이다. 멸종위기인 이 식물을 잘 키워,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으로 가꾸어졌으면, 그래서 휴대폰의 정각 알림음 대신 꽃이 피는 모습으로 “3시!”를 알게 되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