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멋의 특질은? I. 외형적 멋 (1)선의 멋 나는 한국인의‘멋’으로 제일 먼저 꼽고 싶은 것이‘선’이다. 조형 예술의 선과 색, 모양 중에도 가장 뛰어난 것이 선이다. 물론 선은 동양화의 본질이기도 하나 특히 한국 예술에 나타난 선은 곡선미가 뛰어나다. 그 곡선은 부드럽고 섬세하고 매끈하며 ‘은근한 선’을 이루는 가운데 파격과 변화에 의한 독특한 ‘멋’을 자아내고 있다. 이러한 곡선미는 여인네의 옷을 비롯해서 기와집 추녀나 청ㆍ백자와 회화, 석굴암의 십일면상, 태극기, 심지어는 부엌에서 쓰는 식칼이나 음식물에까지 잘 나타나고 있다. 그 중에도 곡선미로 응집된 여인의 옷-짧은 저고리와 긴 치마의 곡선과 직선의 조화, 유난히 길게 드리워진 옷고름과 젖가슴이 보일동말동한 짧은 저고리의 파격, 외씨 버선의 곡선 등은 ‘멋’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저고리 배래기(소매)의 둥글고 은근한 곡선을 비롯해서 푹 파인 도련의 곡선, 섶의 각선과 곡선의 조화, 그 위에 흰 동정의 예리한 직선적 파격미 등은 곡선미의 향연이라고나 할까? 특히 여유 있게 드리워진 긴 치마의 주름이 걸음 걸을 때마다 일렁거리는 부드러운 곡선, 그 위에 바람에 나부끼는 짧고 긴 옷고름의 앙상불의 미, 날아갈 듯한 외씨 버선의 반달형 곡선, 발바닥의 두 번 이어진 반달형 곡선이 사뭇 가파르게 휘어져 내려오던 발등의 곡선과 마주치는 버선코, 지금까지 모든 곡선이 온통 이곳으로 모아져 분출된 듯한 버선콧등의 하늘을 향한 날카로운 각선의 파격적 조화미는 확실히 한국 예술미의 극치라 할 만하다.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넘쳐 흐르는 곡선의 물결을 일며 걷는 여인네의 걸음걸이는 그대로가 율동이며 예술인 것이다. 그 중에도 푹 파인 도련은 한껏 부풀어 오른 여인네의 젖가슴의 흰 살결을 보일 듯 말 듯하게 드러내는 데서 ‘멋’을 돋굴 뿐 아니라 주름이 물결치는 긴 치마의 폭이 바람에 흩날릴 때 흰 속치마가 보일 듯 말 듯하게 희끗희끗 드러나는 데서 느끼한 ‘멋’은 극치가 아닐 수 없다. 한국 여인네의 옷의 특징은 한 마디로 은근한 ‘멋’이라고 할만하다. 선과 모양이 그러며 빛깔 또한 그렇다. 관능미를 있는 대로 노출시키는 양장이나. 몸을 완전히 밀폐시키는 직선적인 중국옷이나 일본, 월남 등의 옷에 비해 우리의 한복은 몸을 은폐시키되 완전한 밀폐가 아니라 어느 한 쪽의 숨구멍을 터 놓아 바람에 의해 자연스럽게 노출되고 곡선이 이루어지게 돼 있다. 이렇게 그 구조를 비롯한 곡선은 파장이나 경박보다는 겸허와 점잖음의 ‘은근한 심성미’를 잘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곡선미는 기와집 추녀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부드럽고도 은근하게 미끄러져 내려오는 지붕의 곡선이 하늘을 향한 처마 끝에 마주치며 매듭지어져 고개를 번쩍 든 각선의 품격, 이것은 버선코와 저고리 섶의 ‘멋’과도 그 맥락을 같이 한다. 더욱이 이중으로 된 겹치마의 포물선의 운치, 용마루 밑 원형 그대로의 둥그스럼한 육중한 대들보의 의젓함, 그 밑에 네모진 직선으로 버티고 있는 기둥들의 하늘을 향한 동경의 자세, 이는 운치와 품격의 극치로 한국 산천 형승(形勝)의 기품이기도 하다. 지나치게 기교적인 중국식 지붕이나 멋 없이 단조롭고 직선적인 일본식 지붕에 비해 단 한푼의 무리나 어긋남이 없는 부드럽고 우아한 곡선의 조화미를 형성한 한국 기와집의 ‘멋’은 자연의 아름다움 그대로다. 이러한 선의 예술은 고려 청자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고려청자가 우리 예술의 극치로 꼽히는 이유도 그 곡선미에 있다. 시작한 곳도 끝난 곳도 없는 듯한 그 가늘고 보드라우며 길고 푸른 선은 벌거벗은 여인네의 매혹적인 어깨 같다고나 할까! 싸늘한 듯하면서도 다정하며 청초한 듯하면서도 부드러우며 매끈하고 날렵한 곡선미는 매료될 만하다. 이러한 곡선미는 식칼에까지 잘 나타나 있다. 다른 나라의 칼이 쓰기에만 편리하게 만들어서 칼날과 칼등의 수평을 이루어 끝이 으레 뾰족하게 마무리진 멋없는 것인데 반해 우리의 식칼 끝은 버선코를 연상하게 산뜻이 위로 감아 올려져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곡선미의 결정체가 바로 태극기다. 만월같이 둥근 원 안에 음양을 상징하는 청홍 교차의 곡선미는 한극의 곡선미를 이 한 곳에서 모아 놓은 듯하다. 시작도 끝도 없이 교차 순환되는 곡선미는 다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현묘한 멋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곡선은 부채의 태극 무늬나 대문의 태극 무늬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어디 이뿐인가 우리 조상들은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음식물에까지 ‘멋’을 부리고 있다. 송편이고 개피떡이 그러며 그 중에도 만두가 더하니 정성껏 빚어서 반달형과 온달형으로 마무리한 것은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한국의 ‘멋’이라 하겠다. 우리 민족은 이토록 ‘멋’을 좋아하면서 ‘멋’을 생활화했던 것 같다. 나는 이러한 곡선미를 반달형에 비유하고 그 특질을 은근함으로 규정하고 싶다. 즉 그 곡선은 굴곡이 심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아주 밋밋하지도 않은 중용적 곡선이라고나 할까? 나는 그 원인을 일차적으로는 우리 민족의 심성미(心性美)에 두고 싶고, 보다 근원적으로는 자연미와 역사적 요인에 기인된 것으로 보고 싶다. 그 까닭은 나중에 논의하기로 하고, 우리 민족의 대표적 심성의 하나는 ‘은근’함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뜻도 있었지만 소나무나 버드나무의 곡선을 유난히 좋아하여 동양화에는 으레 운치를 자아내기에 알맞게 굽은 소나무나 일렁거리는 버드나무를 그려놓고, 그 잎 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는 반달과 그 밑에 펼쳐진 바위, 그 사이를 흐르는 시냇물 등을 등장시켜 은근한 운치를 즐겼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은근한 심성만 가지고 살아온 것은 아니다. 버선이나 기와집 처마의 각선미가 바로 그것이다. 만일 버선코가 없음을 생각해 보라! 버선코의 각선이 없는 곡선미가 성립될 수 있을까? 은근한 곡선이 은근한 한국인의 심성을 잘 나타내는 것이지만 시작과 끝이 없는 듯한 그 가늘고 부드러운 선은 한국인의 끈기도 함께 어려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발등의 곡선과 발바닥의 곡선이 마주쳐서 매듭지어진 버선코의 날카로운 각선은 은근함 속에 ‘끈기’의 심성을 지닌 한국인의 외유내강적인 의지력의 발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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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년 07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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