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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박동규] 105주년 3·1절 기념일을 맞아 3·1독립정신의 고양(高揚), 애국선열의 추모(追慕), 포천시민의 자긍심 함양(涵養)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4년 02월 13일
 
박동규/ 전 영북고 교장, 3·1독립선언서 해설가   
(1) 3·1운동과 3·1독립정신의 고양
일본제국주의는 1910년 강압으로 한일합방(韓日合邦)을 단행했으나 우리민족은 전국 각처에서의 독립시위와 일본 동경에서 유학생 중심으로 2·8 독립선언이 기폭제(起爆濟)가 되어 3·1운동이 발발(勃發)하였다.

이어 서울에서 민족대표 33인이 중심으로 1919년 3월 1일 정오에 최남선이 작성한 3·1독립선언서를 태화관에서 한용운(韓龍雲)이 낭독하고, 탑골공원 팔각정에서는 정지용(鄭芝溶)이 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선창하며 시가행진이 시작 되었고, 보성사에서 선언서 2만 1천부를 인쇄하여 전국 각지에 배포(配布)하고, 조선의 독립을 세계만방(世界萬邦)에 알리고, 선언의 정당성(正當性)과 필연성(必然性)을 밝히고 우리 민족의 결의(決意)와 각오(覺悟)를 알렸다.
 
대한민국 헌법전문에 ‘유구(悠久)한 역사와 전통(傳統)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建立)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法統)과......’로 표기(表記)되어 있어 3·1독립선언서의 위상(位相)이 민족의 장전(章典)임을 알 수 있다.

3·1운동에 대한 이해와 독립운동의 정당성, 민족의 결의와 각오를 촉구하기 위해 광복 후, 문교부에서 출간한 고교 국어교과서에 2013년까지 약 70여 년간 3·1독립선언서를 수록(收錄)하여 교수·학습하여 대한국민의 독립정신을 고양(高揚)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4년부터 고교 국어교과서가 국정(國定)에서 검인정(檢認定)교과서로 전환(轉換)하면서 모든 출판사가 3·1독립선언서를 교과서에 수록하지 않고 있으니 애석(哀惜)한 일이다. 정부는 국어교과서에 3·1독립선언서를 빠른 시일에 재 수록하여 교수·학습으로 대한민국 정체성(正體性)을 바로 확립하고 독립정신을 고양할 것을 국민 제안한다.

(2) 포천에 독립선언서 비 건립으로 시민의 독립정신 고양
민족대표로 서명한 33인의 출신 지역마다 각종 현충(顯忠)시설로 기념관과 기념탑, 복원한 생가(生家)나 생가지(生家祉), 동상(銅像)이나 흉상(胸像),사당(祠堂) 등의 현충시설과 선언서 비를 세워 놓고 애국선열을 추모하고, 독립정신을 선양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는데, 포천은 3·1독립운동에 대한 현충시설이 전무(全無)하다시피 하여 안타까웠다.

이런 안타까운 마음으로 2013.2.8.포천시를 방문하여 선언서 비 건립을 제안하였고, 2013.2.24, 포천시·포천시의회를 각각 방문하여 제안자가 필사(筆寫)한 독립선언서 필사인쇄본(筆寫印刷本)을 일일이 전하면서 독립선언서 비를 세울 것을 국민 제안했다.
 
2014.7.18, 경기북부청사에서 남경필 도지사 면담을 통해서 포천청성공원에 선언서비를 세울 것을 국민 제안하여 경기도 관계부서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진척이 없어, 2015.2.28, 도지사에게 2차 국민 제안하여 도청 관계부서는 경기북부지방보훈청으로 이첩(移牒)하고, 보훈지청은 다시 포천시청으로 이관(移管)되어 시에서 추진하게 되었다.

2015.6.6, 포천청성공원에서의 현충일추념식에 참가하여 참석한 각급기관장·보훈단체장·애국단체장·각급 의원들에게 호소문을 직접 전달하였고, 불참 의원에게는 우편으로 관심과 동참을 호소했다. 포천시노인시지회, 포천시교육삼락회, 포천한시회, 포천명유회 등에 제안자가 필서(筆書)한 선언서의 필사인쇄본·선언서 모사본·건립 호소문 등을 직간접으로 전달하여 관심·동참을 호소했다.

애국선열을 추모하고 독립정신 선양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하여 광복70주년기념사업의 일환으로 포천시민의 날에 선언서비 건립을 촉구하는 국민 제안하였고, 2015.6.26, 시장으로부터 제안이 채택되었다는 회신을 받았다. 이어서 2015.12.14, 의정부지방보훈처 처장을 방문하여 선언서 필사인쇄본·모사본을 전하면서 청성공원에 선언서비의 건립계획을 설명하고 재정지원을 요청했다.

포천시에서는 2016.3.1, 3·1절 97주년경축일까지 독립선언서 비를 제작·건립·제막하기로 하고 예산을 확보하여 추진하였다. 제안자의 선언서 필사본을 시안(試案)으로 하려고 했으나 제안자인 본인은 사양하고 선언서의 활자본(活字本)으로 확정하여 추진하기로 하였으나 준비 부족으로 당초계획보다 다소 지연되었지만 담당 팀장은 소명감(召命感)으로 각종 문헌자료의 조사연구, 시의 재정이 어려움에도 예산부서의 도움으로 예산을 확보, 현충시설임으로 보훈지청의 조언과 지원 요청, 시공할 전문 업체의 선정, 관련부처의 협력 등 제안자의 당초 제안한 규모로 비다운 비를 건립하게 되었다.
 
시에서는 독립선언서 비는 오석판의 크기(2200mmx1700mm)로 확대한 시안(試案)이 채택되어 제안자가 2차 감수하고,‘독립선언서비 제작경위서’의 안내를 석판(1000mmx700mm)을 기초하여 전문업체의 본격적인 공정으로 2016.4.28, 제62회 포천시가 주관한 경기도체육대회 개회일 당일에 제막(除幕)하였으니 오석(烏石)에 각석(刻石)한 선언서비(문화재청 고시 2016-90 664호1.2호로 지정)를 제작하여 청성공원 충혼탑 입구 좌편에·건립했으니 실로 감격해 마지않는다. 선언서비 옆에는 ‘기미독립선언서비 건립경위’ 안내석판 말미에는‘이 선언서비 건립은 전 영북고등학교 박동규 교장이 국민 제안하고 비문을 감수하였으며, 포천시에서 2016년 3·1절 97주년을 맞아 비를 세우다.’로 표기해 놓고 있다.
 
포천시에서는 애국선열을 추모하고 독립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2008년 5월에 간행한 <抱川의 독립운동사>의 오류 내용을 국가보훈처와 광복회를 통해 재확인하여 수정하게 했고, 2016.10.11,포천시장 대행 부시장을 방문하여 충혼탑의 오기(권동진·이종일 선생 타 지역 출신으로 제적, 유충식·함병천·조계식·최학돌 선생 추가 등재)를 수정을 건의해 경기국가보훈지청의 지원을 받아 2016.10.25에 수정했다.

(3) 포천출신의 3·1독립운동가 배출로 시민의 자긍심 함양
1910년, 강제로 한일합방(韓日合邦) 후 일본의 침략에 항거하고 주권회복을 위해서 의병(義兵)·의사(義士)들이 각지에서 일어났고,1919년 3월 1일을 기해 전체 민족의 독립운동이 3·1독립운동이다.

1919년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에 서명(署名)한 조선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포천 향읍(鄕邑)의 호병골 출신으로 독립운동에 적극 참가하여 활동한 독립운동가 근곡(槿谷) 박동완(朴東完, 1885-1941)선생을 비롯하여, 3·1독립운동 당시를 전후해서 포천의 각 지역서의 의병 출신 8인의 공훈독립운동가와 수천 명의 의병들이 후손들의 추앙을 받아야 함에도 현충(顯忠)시설이 전무하여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2008년 5월, 포천시에서 간행한 박경자 편저의 <抱川독립운동사>에는 권동진·이종일 선생의 약전(略傳)과 존영(尊影)이 수록되어 있고 박동완 선생은 미 수록되었고 (2000.8, 수정판 수록), 3·1정신 선양회에서 간행한 <獨立宣言書>에는 민족대표 33인 중 포천 출신으로 권동진·이종일·박동완 선생 등 3인의 존영(尊影)·약전(略傳)이 등재되어 있어 사실(史實)을 정확히 규명해야 했다.

2015.11.4, 제안자는 서울 마포 합정동 광복회관 내 독립선언서33유족회를 직접 방문해 각종 기록·자료를 확인했다. 그 결과 근곡 박동완 선생만이 포천 호병골 출신이고, 그 밖의 권동진 선생은 충북 괴산, 이종일 선생은 충남 태안 출신으로 확인되었다.

박동완 선생 유족의 손자인 박재상과 당일 전화통화로 선생의 출신지가 포천시 호병골임을 전해주었더니 양평 출신으로 인지(認知)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다른 문헌에도 양평으로 오기하고 있다. 그 다음날 각종 자료를 가지고 와서 국가보훈처 공훈록에서 내용을 확인 한 바 선생은 포천 출신임을 재확인 되었으며, 포천시도 국가보훈처 공훈록에서도 재차 확인한 바 있는데 이런 오류를 사실대로 <抱川의 독립운동사>를 수정 보완하게 하였으며, 포천청성공원 충혼탑의 호국영령 3·1운동가 중에 타 지역의 권동진·이종일 선생이 포함·오기된 것을 역사바로세우기로 하루 속히 바로 수정해야 한다고 시청에 제안·촉구해서 수정하게 했다.

포천은 전통적으로 명현(名賢)과 충신(忠臣)을 다수 배출한 향읍(鄕邑)이라고 우리 시민이 자긍(自矜)하지만 민족대표로 서명한 박동완 선생과 수많은 3·1독립운동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거명(擧名)된 적도 별로 없거니와 인지하고 있는 시민이 과연 몇 명이나 되는 지 자문하고 싶고 안타까운 일이다.

근곡 박동완 선생은 100년간 양평 출신으로 인지되어 되어 왔으나 필자가 17개 문헌자료틑 검정 확인한 결과 포천 호병골 출신임을 확인했다. 근곡 박동완 선생은 우리 포천 호병골 출신으로 고종 때 기독교 신보사에서 기자로 일하며 종교생활과 민족사상을 고취하였고, 3·1운동 당시 기독교 대표자로서 서명·날인하여 왜경에 체포되어 2년간 복역하였다.

출옥 후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 소년위원장과 신간회 상임간사로 활동하다가 1923년 하와이로 망명하여 한인교회 목사로 독립운동에 적극 활동하였다.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을 수장(受章)하였다.

(4) 포천 독립기념관 건립으로 시민의 애향심 함양
선언서에 서명한 33인의 출신지역마다 추모·현충시설을 해놓고 독립정신을 선양하고 애국선열을 추앙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 포천시민의 관심과 동참으로, 한말(韓末) 의병활동의 의병장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 선생을 비롯한 의병활동, 근곡(槿谷) 박동완(朴東完) 선생의 선언서 서명의 3·1독립운동, 광복회의 독립운동,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대한독립단의 독립운동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현충시설인 종합독립기념관을 세워 시민의 독립정신을 고양(高揚)하고, 애국선열을 추모하기 위해 타 지역에 비견(比肩)할 수 있는 독립기념관을 건립해야 한다. 경제개발·주민복지·관광진흥·교육발전 등이 시정에 우선해야 하지만 문화융성(文化隆盛)도 병진(竝進)해야 한다.
 
제안자는 2014.10.23, 민족대표 33인 중 선언서를 낭독한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선생의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의 소재 ‘萬海記念館’을 방문하였고, 2015.11.20, 충북 청주시 북이면 소재 33인 민족대표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 선생의 ‘孫秉熙先生遺墟地’를 답방하여 현충시설을 두루 관람하고 참고 자료를 제공받았다.

후일 포천독립기념관 건립에 참고 될 안내 자료를 시청 담당부서에 전달했고, 시장에게도 독립기념관 건립을 국민 제안하여 시에서 종합기념관을 건립하기로 시민에게 공지하였으니 기대해 마지않는다.

우리 포천지역은 남북통일시대 한반도의 중심지로 민족동질성회복의 거점(據點)이기에 포천독립기념관을 앞당겨 세워서 조선민족의 장전(章典)인 기미독립선언서에 담긴 3·1독립정신을 근간(根幹)으로 하여 8천만 민족의 통일헌법 제정의 모태(母胎)가 되리라 확신한다.

포천독립기념관의 건립은 애국선열의 존영(尊影), 연보(年譜)나 약전(略傳), 유품(遺品)이나 소장품(所藏品), 서책(書冊)이나 유필(遺筆) 등을 소장·전시하여 전시민의 참관은 물론이고, 3·1독립정신이 기본이 되어 다가오는 남북통일 시대의 한반도의 거점(據點)지역에서의 전민족의 독립정신을 고양하며 애국선열을 추모하는데 주도적 역할 기능을 할 수 있게 함이다.
포천청성공원에 건립한 선언서비, 필자의 선언서 해설 모습

박동규/ 전 영북고 교장, 3·1독립선언서 해설가 

*칼럼 및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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