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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부사의] 납언(納言)과 간언(諫言)

바른말에 귀 기울여 자성(自省)해야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8년 1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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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언(諫言)이란 말은 들어보았어도 납언(納言)이란 말은 별로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납언에서 납(納)은 의미요소로 실의 뜻인 사(糸)와 발음요소인 내(內)가 더해진 글자로 본뜻은 ‘물에 넣다’이다. 이후 ‘들일’, ‘바칠’의 뜻은 파생되었다. 그리고 간언에서 간(柬)은 ‘가리다’라는 뜻을 품고 있다. 간(諫)은 이처럼 말[言] 중에서 좋은 것만을 가려[柬] 뽑아 충고한다는 데서 ‘간하다’라는 뜻을 나타낸다. 여기서 납언은 임금이 신하의 간언(諫言) 즉 바른 말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사서(史書)에 보면 중국 순 임금 때에 임금의 뜻을 백성에게 고하고 백성의 뜻을 임금에게 올려 임금과 백성을 소통시키던 직책을 납언이라 했다.

옛날 조선시대에 간관(諫官)이란 제도가 있었다. 간관이란 사간원(司諫院)과 사헌부(司憲府) 벼슬아치들을 통 털어 이르는 말이다. 사간원은 삼사(三司)의 하나로 임금에게 간(諫)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官衙)를 말하는 것이고 사헌부는 정사를 비판하고 벼슬아치의 잘못을 가려내어 백성의 억울함을 다스리던 관청(官廳)을 말하는 것이다. 왜 이런 제도를 두었겠는가? 정사(政事)를 바르게 잘 다스려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태평성대(太平聖代)를 구가(謳歌)하기 위함이었다. 탐관오리(貪官汚吏)들을 솎아내고 백성들이 격양가(擊壤歌)를 부르는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오늘이라고 다르지 않다. 벼슬을 사는 관리(官吏)들은 간언을 해야 한다. 나라의 녹[(祿俸)을 먹는 사람들은 바른 말을 해야 하다. 자리에 연연하고 당리당략(黨利黨略)만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먼저 나라를 생각하고 국민을 생각해야 한다. 나라의 살림살이가 어떠하고 국민의 삶이 어떠한가를 수시로 살피고 물어야 한다. 바른 말하는 사람을 눈총주고 외면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말을 경청(傾聽)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납언(納言)해야 한다. 옛말에 나무는 먹줄을 받으면 곧아지고[木受縄則直] 사람은 간언을 받아들이면 거룩해진다[人受諫則聖]고 했다. 위정자나 관리(官吏)들이 음미(吟味)해야 할 대목이다.

어찌해야 하는가? 전문가(專門家)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양신(良臣)의 말을 들어야 한다. 충신(忠臣)의 말에만 귀 기울여서는 안 된다. 간신(奸臣)은 더 더욱 아니다. 귀에 거슬리는 말이라도 양신의 말을 들어야한다. 양신의 간언을 들어야 한다. 옛날 간관들은 직(職)을 걸고 간언했다. 아니 목[生命]을 걸고 간언했다. 충언(忠言)을 했다. 임금의 노여움이 무섭다고 옥고(獄苦)와 죽음이 두렵다고 주저하지 않았다. 자신의 상소(上疏)가 자신의 간언이 자칫 화를 불러올지 모른다 해도 임금의 잘못을 외면하지 않았다. 오백년 아니 천년 사직(社稷)이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들의 간언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모두들 어렵다고 한다. 경제가 아니라고 한다. 한국 경제가 일본형 장기 불황에 들어서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놀랍게도 소득주도성장 코드인사 관료경시라는 일본 민주당의 실패한 정책을 답습하고 있다고 걱정한다. 그러나 아베노믹스는 우리에게 일정 부분 활로를 보여준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 하지 않았는가. 남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살피고 배워야 한다. 비결(祕訣)은 다른데 있지 않다. 시장에 돈이 돌게 하고 규제를 풀어 기업의 기(氣)를 살려 기술 혁신 투자와 고용을 늘리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주는데 있다. 트럼프도 마크롱도 같은 처방을 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베네수엘라가 왜 침몰했는가? 베네수엘라는 그동안 외국의 침략을 받은 일이 없고 이웃 콜롬비아처럼 내전에 시달리지도 않았다. 1년 내내 활동 가능한 날씨에 대형 자연재해를 겪은 적도 없다. 유전이 고갈된 것도 아니다. 남 부러울 것 없는 천혜(天惠)의 환경이다. 이렇게까지 축복을 받은 나라는 별로 없다. 그런데도 신기루처럼 무너져 내렸다. 포퓰리즘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나라가 기울어 가는데도 누구 하나 바른 소리를 하지 않았다. 아니 바른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간언하지 않고 납언하지 않았다. 오늘 우리는 어떠한가? 나라를 걱정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모두 자성(自省)하고 또 자성할 일이다.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8년 1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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