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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창종의 포천 이야기] 미공법(美公法) 480호와 대충자금(對充資金)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8년 12월 28일
 
ⓒ 포천신문  
나는 뉴스를 보거나 태극기가 휘날림을 보고 눈물을 글썽일 때가 가끔 있다. 웬 80이 넘은 나이에 청승이냐고 꾸지람을 할는지 모를 일이다.

내 조국 대한민국은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었다. 8‧15해방이라고 하였다. 정부 수립 이후, 광복이라 했다. 3년 간 미군정을 거쳐 독립이 되었으며 UN의 승인을 받았는데 48:6이란 지지를 받았다. 38선 이남만의 단독 정부였다. 독립이 되자 미군정은 장관들에게 관용차를 선물하고 차관이하 고위 관리도 걸어 다니며 공무를 수행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식량문제가 제일 큰 문제였다. 미군정은 웃기는 말을 했다.

“한국(조선) 사람들은 왜 빵도 먹고 고기도 먹지 왜 ‘쌀’만 달라고 아우성을 치느냐?”

쌀은 수출하고 매년 흉년이 들어서 절대량의 쌀이 모자랐다. 그래서 미군정(美軍政)은 위문품을 공무원이나 사회단체 소속원들에게 나누어 주고 식량 보탬을 하였다.

내 고향 포천에도 미 육군 중위가 군정장교로 부임하여 이진수 군수를 임명하고 군정을 행하였다(38선 이남). 1948년 독립 후, 미국과 한국정부가 짜낸 식량 정책의 보도는 듣도 못하던 ‘미공법 480호’와 ‘대충자금’이었다. 미국의 잉여농산물(남은 식량)을 미국에서 미국 수송선에 돈을(운반비) 주고 실어다가 한국시장에다 판매하여 그 판돈으로 국가 예산을 편성하고, 나라살림을 하는 것이다. 그 자금을 ‘대충자금’이라 했다.

포천에서 걷은 대금으로 포천의 공무원 월급도 못주던 시절이었다. 한내 개울가에 주둔하고 있던 미제24사단 연대 병력도 아닌 대대 병력이 소모하고 버린 쓰레기 더미를 뒤져 사는 백성이 많았다. 당시 병력은 한국군 7사단 9연대가 와서 미군 주둔지에 주둔하였다.

정부는 미국의 원조로 겨우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공무원은 쌀 한 가마도 안 되는 돈을 봉급이라고 받으며 예산을 축내고 살았는데 공금 횡령도 먹고 살기 어려워서 했다면 죄를 묻지 않았다.

독립 그리고 미공법 480호, 대충자금을 생각하면 서글프다.

6‧25전쟁도 미군의 도움 없이 승리할 수 있었겠는가. 내 고향 포천에도 미공법과 대충자금으로 겨우겨우 예산을 얻어 살던 시절이 있었다. 미국의 도움이 없이 세계 10대 무역국이라고 으쓱댄다.

그러나 미국의 도움이 없이 경제 독립국의 명예를 지키고 사는 시절은 아직도 더 긴 세월을 살아야 한다.

‘큰 고기가 작은 고기를 먹고 살고…’ 옛말을 잊지 말고 옛날 미공법 480호에 의한 대충자금으로 살던 시절을 잊지 말고 미국과의 경제협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벽운 김창종 / 수필가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8년 1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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